[투데이 窓] 휴머노이드 진화 이끄는 '소뇌 모사 반도체'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기사 입력 2025.07.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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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칼럼]

인간의 두뇌에는 약 860억개의 신경세포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신경세포가 분포된 뇌 부위는 어디일까? 대부분은 전체 부피의 80%를 차지하는 대뇌를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의외로 전체 부피의 약 10%에 불과한 소뇌다. 전체 뉴런의 80% 이상에 해당하는 약 690억개의 신경세포가 이 작은 부위에 몰려 있다.

소뇌는 시각, 청각, 신체 감각 등 감각 정보와 대뇌의 운동 명령을 통합해 인체의 움직임을 부드럽고 정밀하게 조율한다. 걷거나 달릴 때 균형을 잡고, 글씨를 쓸 때 손의 미세한 떨림을 제어하며, 자세가 변해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반응할 수 있는 건 소뇌 덕분이다. 언어, 추론, 판단과 같은 고차원적 기능이 아닌 무의식적이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두뇌 신경의 80% 이상이 투입된다는 사실은 휴머노이드 개발에 있어 인간 수준의 움직임을 구현하려는 기술이 얼마나 어려운 도전인지를 보여준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휴머노이드 기술 경쟁이 본격화되며 파쿠르나 공중제비 같은 고난이도 동작을 선보이는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겉보기에 인간과 비슷한 운동 능력을 갖춘 듯하지만, 실제로는 사전 시뮬레이션과 반복 학습에 기반해 설계된 결과물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의 성과이긴 하나, 지면 상태나 시야, 근육 반응 등 다양한 변수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보정하는 인간의 움직임과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스스로 균형을 조절하는 능력, 즉 소뇌의 기능은 인간과 비슷한 움직임을 구현하려는 휴머노이드 개발에서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휴머노이드는 움직임 생성과 제어를 대부분 소프트웨어로 구현해왔다. 이론적으로 소뇌의 기능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흉내 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한계가 크다. 수십 개 관절과 수많은 센서를 가진 휴머노이드는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복잡한 동작을 정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또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즉각 반응하려면, 매우 빠른 계산 처리 능력과 메모리 접근 속도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컴퓨터는 연산 장치와 메모리 사이에서 데이터를 주고받는 과정에 병목 현상이 생겨 반응 속도와 에너지 효율 모두에 제약이 따른다. 움직임이 복잡해질수록 계산량과 전력 소모도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만으로는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로봇을 구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사람의 소뇌 구조와 작동 방식을 반도체 칩 형태로 구현한 '소뇌 모사 반도체'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소뇌를 반도체로 구현하려는 시도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관련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2016년 독일 뮌헨 공과대학교 연구팀은 범용 뉴로모픽 칩인 'SpiNNaker'에 소뇌 신경망 모델을 구현해 로봇 팔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데 성공했고, 외부 힘 변화에 따라 실시간 위치를 조정하는 정밀한 움직임을 구현했다.

2024년 일본 연구팀은 약 1만개의 '스파이킹 뉴런'으로 구성된 소뇌 신경망을 구현하여, 모터에 걸리는 부하 변화에 적응하며 안정적인 제어에 성공했다. 같은 해 KIST는 CES 2024에서 소뇌 구조를 모사한 전용 칩(ASIC)을 선보였으며, 자율주행차량이 운전자의 습관을 학습하고 따라 하는 기술을 시연해 주목받았다. 이처럼 소뇌 모사 반도체는 향후 휴머노이드에 사람과 유사한 움직임을 이식하는 데 활용될 수 있으며, 테슬라의 '옵티머스'처럼 인간 동작을 학습하는 로봇 기술과도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기반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패션계 거장 위베르 드 지방시는 "명품은 디테일에서 완성된다"는 말을 남겼다. 인간의 움직임에서도 이러한 디테일을 정밀하게 조율해 자연스러움을 만들어내는 핵심 기관이 바로 소뇌다. 앞으로 휴머노이드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사람처럼 정교하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능력이 로봇 완성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실제 적용 가능한 수준의 소뇌 모사 반도체 기술이 개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관련 연구도 개념 검증 수준에 그치고 있다.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 역시 아직은 범용칩 개발에 집중돼 있으며, 특정 기능에 특화된 맞춤형 칩은 본격적으로 개발되지 않았다. 세계 각국이 휴머노이드 기술 경쟁에 속도를 내는 지금, 소뇌 모사 반도체는 판도를 바꿀 잠재적 '게임체인저'이자 한국이 기술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뇌과학, 회로설계, 로봇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긴밀한 협업은 물론, 이를 지속적으로 견인할 국가 차원의 관심과 전략적 투자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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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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