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 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14일 일본 오사카의 대형 유통업체 이온몰 매장에서 5kg짜리 쌀 한 포대 가격이 5000엔(약 5만원)에 판매됐다.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오른 가격이다. 18년째 오사카에 거주 중인 김모씨는 "쌀이 귀해진 것도 문제지만 품질까지 떨어져 사료용으로나 쓸 수 있을 정도"라며 "초밥 식당들은 요즘 원재료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일본산 쌀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수입쌀이 그 빈자리를 빠르게 메우고 있다. 이달 초 한국산 쌀 10톤이 수입되었는데, 며칠 만에 모두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온몰은 곧 미국산 쌀 판매도 시작할 예정이라다. 쌀 자급률이 높고, 자국산에 대한 선호가 유난히 강한 일본에서 이 같은 변화는 이례적이다. 김씨는 "지금은 관세가 붙어도 일본산 프리미엄 쌀인 '고시히카리'보다 수입쌀이 더 저렴하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일본은 매년 약 700만톤의 쌀을 생산해 왔지만 2023년에는 폭염과 태풍으로 인해 약 5%가 줄어든 660만톤에 머물렀다. 특히 1등급 쌀의 비율이 60%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품질 저하가 본격화됐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이주량 선임연구위원은 "이 같은 상황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더 이상 쌀이 남아돈다는 인식은 유효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는 쌀 생산과잉이라는 이유로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여왔고, 논 면적은 줄어드는 추세다. 관련 분야를 이끌 미래의 연구인력도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는 오래 전부터 필요했다. 열대성 벼 품종인 '인디카'에 대한 연구 확대 주장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최근에야 그 중요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꾼다면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기후위기를 한국 쌀 산업의 재도약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돌파구는 첨단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농업'이다. 인디카 품종과 같은 새로운 벼 품종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재배하고, 여기에 스마트팜 기술을 접목해야 한다. 센서, 자동화 장비,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을 현장에 적용하면 기후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고품질 쌀 생산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혁신은 누가 이끌어야 할까. 대형 농업기업이나 공공기관도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변화에 민첩하고 실험정신이 강한 스타트업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지금의 농업은 단순히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의 싸움이 아니다.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생산, 유통 플랫폼을 통한 소비자 연결, 속도와 품질을 겨루는 물류 경쟁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비자의 요구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기후와 환경 변수는 예측 불가능해진 시대다. 이런 복잡한 변화를 기민하게 읽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주체는 스타트업이다.
따라서 한국 쌀 산업 역시 생산량 조절이나 단순한 가격 보전에 머물지 않고, '스타트업 중심의 농업 기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는 단지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식량 안보, 기후위기 대응, 지역경제 회복을 아우르는 국가적 과제로 연결된다.
흔히 농업 정책을 항공모함에 비유한다. 방향을 한번 정하면 쉽게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항로를 반드시 수정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기술력과 창의성으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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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류준영 차장 joon@mt.co.kr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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