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장보현 한국기술사회 상근부회장/사진=김창현 기자 "실험실에서 과학자가 기술을 만들면, 현장에서는 기술사가 그 기술을 작동하게 만듭니다."
장보현 한국기술사회 상근부회장은 기술사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기술사는 단순히 감리를 수행하는 기술인이 아니라, 기술 개발과 현장을 잇는 '실행자'"라고 강조했다.
한국기술사회는 '기술사' 자격을 지닌 전문가들의 대표 조직으로 1964년 설립됐다. 기술사들의 권익 보호와 직무 역량 강화를 위해 교육, 연구, 정책 제언 등의 사업을 펼치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과 협력해 신기술 평가, 설계 검토, 감리, 기술 자문 등의 전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최근에는 기술사들이 창업·벤처기업의 멘토로 참여하거나 기술 실용화와 사업화 자문 등을 통해 혁신 생태계 조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한국기술사회에는 약 2만3000명 이상의 기술사가 등록돼 있으며, 이들은 건축, 토목, 소방, 전기, 정보통신 등 84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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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개발에서 실용화까지…"현장 아는 전문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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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산불, 땅꺼짐(싱크홀) 등 재난·재해나 생활안전과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R&D(연구개발)에 힘을 쏟으면서, 현장 전문성을 갖춘 기술사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포함한 관계부처는 이달 1일, 재난·재해의 사전 탐지와 예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제3차 과학기술기반 사회문제해결 종합계획'의 이행을 위해 전년 대비 31% 증가한 1조9459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번 계획에는 기술사업화, 제품 인증, 해외 진출, 공공조달 연계, 벤처형 자선(벤처 필란트로피) 활용 등을 포함한 '문제해결 연구자 펠로우십' 시범 운영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이는 기술 개발이 실제 현장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못한 기존 사례들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4년부터 4년간 환경부 등 여러 부처가 참여해 개발한 '녹조 제거용 응집제'는 지자체의 식수 오염 우려로 인해 현장 적용이 어려웠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실증 수행시간 부족(51.9%), 예산 부족(37.8%), 실증 대상·지역 섭외 어려움(35.9%) 등 복합적인 이유로 많은 기술이 개발된 후에도 현장에 정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장 부회장은 기술사의 역할 확대가 이 같은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사는 설계, 진단, 검증 등 기술의 전 주기를 담당하는 전문가"라며 "AI 기반 예측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것을 실제 현장에 안전하게 적용하는 일은 풍부한 경험을 갖춘 기술사의 몫"이라고 말했다. 장보현 한국기술사회 상근부회장/사진=김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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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사, 스타트업 실용화 돕는 든든한 조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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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부회장은 무엇보다 재난·재해 예방 기술의 상당수가 딥테크(첨단기술) 스타트업에서 개발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사가 이들 기업의 실용화를 지원하는 든든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사들은 전통적인 건설·토목 분야에만 머물지 않고, 이제는 스타트업 생태계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야 한다"며 "특히 AI, IoT(사물인터넷), 환경기술 등 사회문제 해결형 기술을 개발하는 초기 기술기업에게 기술사의 현장 경험과 전문성은 실용화, 안전 검토, 검증 등 모든 단계에서 핵심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타트업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실제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기술사는 실증 이후의 표준화, 인증, 안전성 확보 등 후속 과정 전반을 밀착 지원할 수 있어 이러한 공백을 효과적으로 메워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 부회장은 실제로 일부 기술사들이 개인 사무소를 통해 부설 연구소를 운영하거나, 산학연 협력 네트워크를 활용해 스타트업과 공동 연구 및 기술 검증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구체적인 협업 사례로 'AI 기반 재난 예측 시스템 공동 개발', '스마트 센서 기술의 설치 및 감리', '친환경 소재 구조물의 안전성 검토' 등을 소개했다.
그는 "이러한 협업은 스타트업의 기술 신뢰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며, 정부·지자체 조달 시장이나 대기업 B2B(기업 간 거래) 시장에 진출하는 데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기술사들이 가진 실전 경험과 판단력은 초기 기업이 리스크를 줄이고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데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