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조선 떠난 '러스트벨트' 군산...'플라즈마'로 도시부활 꿈꾼다

군산(전북)=류준영 기자 기사 입력 2025.05.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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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군산 '플라즈마기술연구소'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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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실험동 1층에 위치한 실험실에서 폐기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사진=류준영 기자
환경실험동 1층에 위치한 실험실에서 폐기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사진=류준영 기자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길가 곳곳엔 빈 주택과 '임대' 딱지가 붙은 상가, 문이 굳게 닫힌 폐공장이 눈에 띄었다. 군산은 한 때 GM대우,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덕분에 활기를 띄던 산업도시였다. 하지만 이들 대형 공장이 잇따라 가동을 중단하고 철수하면서 도시는 빠르게 쇠락해갔다. 결국 군산은 2018년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 및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지역경제가 악화됐다.

그런 군산에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벤처·스타트업은 물론, 중소·중견기업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진 것이다. 이 변화를 이끄는 중심에는 국내 유일의 플라즈마 응용 전문 연구기관, '플라즈마기술연구소'가 있다. 전북 군산고속도로터미널에서 남쪽으로 약 30분 거리. 한적한 시골길 끝에 자리한 이 연구소는 미세 가공, 박막 증착, 반도체 제조는 물론 폐기물 처리와 에너지 전환,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 수소 생산 등 요즘 가장 '핫'한 기술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우선 플라즈마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고체, 액체, 기체를 넘어선 '네 번째 물질 상태'를 일컫는다. 기체에 강력한 에너지를 가하면 분자나 원자가 분리돼 전자와 이온으로 나뉘는데, 이때 생기는 상태가 바로 플라즈마다. 우리가 보는 번개, 형광등 빛, 태양 표면 등이 모두 플라즈마다.

최용섭 플라즈마기술연구소 소장은 "운동화 밑창을 견고하게 접착할 때도 플라즈마를 쓴다"며 "생활 속에 플라즈마를 안 쓰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우주의 99%를 차지하는 플라즈마를 인류는 아직 다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소장은 2012년 연구소 개소 이후 10년 넘게 이어진 '플라즈마 기술 실용화' 여정을 이끌어왔다.


연구소 환경실험동에 들어서자 금속 원통과 형형색색 케이블이 얽힌 장비들이 보였다. 원통엔 파란색 띠가 감긴 벨브주입기와 같이 생긴 장비가 부착돼 있었다. '플라즈마 토치'다. 이 장치를 통해 하루 3톤(t)의 폐기물이 처리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폐기물 더미를 에너지로 바꾸는 실험이다.

이곳 책임자인 강인제 자원순환기술팀장은 "플라즈마 열로 폐기물을 녹여 기체화하는데 토치로 최고 1만도에 가까운 열을 일으킨다"며 "이 같은 열로 완전 분해가 되면 폐기물이 합성가스가 되고, 연료전지로 전환돼 전기를 생산한다"고 말했다. 주로 폐플라스틱, 감귤 찌꺼기 같은 유기성 폐기물을 쓴다. 강 팀장은 "일반 소각보다 유해가스가 5~10배 이상 적고, 이산화탄소도 거의 배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 기술은 현대중공업파워시스템 등 대기업들과 대규모 사업화 협의가 한창이다.

인공 다이아몬드를 키우는 실험실 내부 모습/사진=류준영 기자
인공 다이아몬드를 키우는 실험실 내부 모습/사진=류준영 기자

다른 실험동으로 자리를 옮기자 또 다른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실험실 한 가운데에서 인공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장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기존 실리콘을 대신할 인공 다이아몬드 웨이퍼를 만드는 중이다. 최 소장은 "메탄가스를 넣고 강력한 마이크로파를 쏘아 다이아몬드를 키우는 것"이라며 "이 다이아몬드는 전력 반도체와 양자센서, 우주항공 등 미래산업에 필수적인 소재"라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마이크로웨이브 플라즈마 CVD(화학기상증착법) 기술을 활용해 150mm(6인치) 대형 웨이퍼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기술은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분야다. 최 소장은 "5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기대를 내비쳤다. 이어 "다이아몬드는 열전도율, 방사선 내성 등에서 현재 반도체 소재를 압도한다"며 "실리콘 이전과 이후가 산업의 시대를 나눈 것처럼 다이아몬드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공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장비가 돌아가고 있는 모습사진=류준영 기자
인공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장비가 돌아가고 있는 모습사진=류준영 기자

플라즈마 기술은 농업 분야에서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연구소는 스마트팜, 농식품 저장, 폐비닐 미생물 분해 촉진 등 다양한 농업 융합기술도 개발했다. 최 소장은 "농업은 식량안보 측면에서 꼭 필요한 분야"라며 "특히 질소비료를 플라즈마로 합성하는 기술은 질산염 수입이 어려운 국가에 수출해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으로 100만불 이상 수익을 냈다"고 말했다. 딸기 저장기간을 연장하는 실험도 성공했다. 저장고에 설치한 플라즈마 장치는 딸기 신선도를 수주 이상 늘렸다.

기술 수출 실적도 주목할 만하다. 연구소는 10년 이상 보유한 액상 플라즈마 기반 바이오디젤 생산 특허를 미국 기업에 판매한 바 있다. 이 밖에 도시바·삼성전자·하이닉스가 사용하는 반도체 플라즈마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의료용 창상치료 활성수, 정전기 제거기술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쌓여 있다.

지금까지 연구소는 총 55건의 기술이전을 달성했으며, 정부 R&D 투자 대비 기술료 수익률은 16.7%에 달한다. 이는 공공기관 평균(3.7%)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연구원이 직접 창업한 사례도 있다. 플라즈마 기술로 나노 다이아몬드를 제조하는 SW케미칼즈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폐탄약 폭파 과정에서 나오는 나노 다이아몬드를 정제해 자동차 윤활유 등에 활용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최용섭 플라즈마기술연구소장/사진=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최용섭 플라즈마기술연구소장/사진=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최 소장은 "플라즈마기술연구소는 단순한 연구기관이 아니라 기업 현장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 수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산업 지원 플랫폼"이라며 "지금은 쓰레기를 에너지로, 이산화탄소를 자원으로, 데이터를 산업으로 전환하는 플라즈마의 가능성에 주목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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