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전투기 부품도 금세 출력…3D프린팅이 만든 '공정 혁신'

울산=류준영 기자 기사 입력 2025.06.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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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울산과학기술원(UNIST) '3D프린팅융합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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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항공우주, 인체 착용형 장비, 군사 분야에 필요한 맞춤형 제품엔 이미 3차원(D) 프린팅 기술이 도입됐다. 기존 제조업 공정을 거의 대체할 수준까지 올라섰다고 보시면 된다."

울산(통도사)역에서 차로 30여 분 달려 도착한 울산과학기술원(UNIST) '3D프린팅융합기술센터'. 지난해 2월 울산 남구 두왕동 산업단지캠퍼스 내에서 문을 연 이곳은 4차 산업혁명의 상징처럼 자리 잡고 있다.

평범한 건물 외관과 달리, 1층 자동문이 열리자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공장 특유의 쿵쾅대는 기계 소음은 없었다. 대신 정밀기계 특유의 낮고 고른 진동음이 공간을 채웠다.

이곳 핵심은 '레이저 기반 금속 파우더 3D프린팅'이다. 금속 파우더를 미세하게 깔고, 그 위를 고출력 레이저가 스캔하며 녹여 붙인다. 이 과정을 수백, 수천번 반복하면 하나의 부품이 완성된다. 단순해 보이지만 기존의 절삭이나 주조 방식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복잡한 구조를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3D프린팅융합기술센터 1층 내부 모습/사진=UNIST
3D프린팅융합기술센터 1층 내부 모습/사진=UNIST
센터 안내를 맡은 한 연구원이 "여기, 이 층들이 전부 레이저로 한 겹씩 찍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시선을 옮기니 작업대 위에 지층처럼 단단히 쌓인 원뿔 형태 모양의 금속 부품이 놓여 있었다. 연구원이 출력물 안쪽을 가리키며 "이 작은 구멍이 냉각 채널"이라고 말했다. 중대형 선박의 엔진 내부를 식히는 데 필요한 냉각통로라는 설명이다.

고온이 발생하는 조선·항공우주·자동차 부품 안에 유체가 흐를 수 있도록 한 통로는 과거엔 만들기 어려워 별도로 조립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설계 단계부터 채널을 삽입해 통째로 출력해낸다. 3D프린팅이 단순한 기계부품 외형을 찍어내는 수준을 넘어 내부 기능까지 종합적으로 설계하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둘러본 출력물 중에는 고내열 합금으로 만든 엔진 부품, 복잡한 유로가 얽힌 임펠러, 내부를 격자로 구성해 무게를 줄인 티타늄 부품 등이 있었다. 하나같이 산업 현장의 실수요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센터 1층 출력실에는 방식별로 다양한 3D프린터가 배치됐다. 항공 부품 제작에 최적화된 장비(EOS M290), 소형 정밀용 장비(GE Additive Mlab 200R), 최대 5m 크기까지 제작 가능한 대형 장비 등이다.

하지만 출력만으로 부품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진짜는 그 다음이다. 연구원은 '후처리 구역'으로 안내했다. 고온·고압 환경에서 내부 기공을 제거하는 등방압프레스, 전해 연마기, 초음파 세척기, 3D 스캐너 등 각종 장비가 줄지어 있었다. 출력된 부품은 '언팩', '디파우더링(가루 제거)', '와이어커팅', '표면처리' 등의 과정을 거쳐야 완성된다.
한국 중소기업이 만든 산업용 금속 3D 프린터(MX-600)/사진=류준영 기자
한국 중소기업이 만든 산업용 금속 3D 프린터(MX-600)/사진=류준영 기자
특히 크기가 압도적인 데다 거대 로봇팔이 달려 있는 장비에 눈길이 갔다. 로봇팔이 3D프린터 출력물을 들어 드럼통에 넣으면 화학반응이 일어나 금속 표면을 부드럽게 만든다. 연구원은 "표면이 거칠면 냉각수나 기체 흐름을 방해한다. 출력만큼이나 매끈한 마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3D프린팅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정밀해서가 아니다.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원하는 형상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 GM의 경우 3만5000달러(약 4757만원)짜리 3D프린터 한대를 구매해 자동차 조립에 쓰이는 소모품을 제조, 2년간 30만달러(4억원)를 아꼈다는 통계도 있다.

특히 설계 변경이 잦은 우주항공 분야에선 시간 단축 효과가 절대적이다. 주조틀을 새로 만들 필요없이, 설계 수정 후 바로 출력해 실험이 가능해서다. 록히드마틴, 노스롭그루만 같은 미국 군수업체는 차세대 전투기 제작에 금속 3D프린팅 기술을 이미 도입해 활용 중이다.

국내 우주 스타트업인 이노스페이스는 센터와 함께 로켓 엔진용 연소실을 개발 중이다. 연구원은 "반복적인 설계 변경이 필요한 우주항공 산업에서 3D프린터는 혁신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열쇠나 다름없다"며 "연소실 개발 주기를 최대한 단축한 데다 부품 경량화도 가능해 발사체에 더 많은 화물을 탑재할 수 있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3D프린팅융합기술센터에서 3D프린터로 제작한 전기차/사진=UNIST
3D프린팅융합기술센터에서 3D프린터로 제작한 전기차/사진=UNIST
센터 내 3D프린터 한 대당 가격은 최소 15억원에서 많게는 30억원에 달한다. 장비마다 사용하는 소재도 알루미늄, 티타늄, 고열합금, 철강 등 다양하다. 소재를 바꾸기만 해도 오염 방지를 위한 세척과 교체 작업에 많은 시간이 드는 탓에 대부분의 장비는 소재 전용으로 운용된다.

UNIST의 3D프린팅융합기술센터는 총 409억원이 투입돼 지하 1층~지상 4층, 연면적 4347㎡ 규모로 조성됐다. 총 31종 46대 장비를 갖췄으며, 금속·폴리머 복합소재 기반의 정밀제조 공정이 가능하다. 현대차와는 차세대 모빌리티 부품 개발, 도심항공교통(UAM)용 출력 기술 협업도 진행 중이다.
김남훈 센터장(UN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3D프린팅 기술로 한국의 자동차, 조선, 우주 부품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공정과 복합소재를 개발하고 있다"며 "3D프린팅은 이제 단순한 출력이 아니라 디지털 제조 전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금속-폴리머 복합소재 등 다중소재를 적절히 활용하는 설계기술(DFAM(Design For Additive Manufacturing·적층제조특화설계)을 응용해 3D프린팅 대량생산 응용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앞으로 반도체, 인공지능, 소형 원전 등의 미래산업과의 융합을 이끌 것"이라고 덧붙였다.
3D프린터로 출력한 자율주행 셔틀버스/사진=UNIST
3D프린터로 출력한 자율주행 셔틀버스/사진=U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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