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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지식재산처 시대, 지식-금융 융합이 국가 혁신 이끈다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기사 입력 2025.11.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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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이 지식재산처로 승격되면서 한국은 산업화 이후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을 맞게 됐다. 지식재산처 승격은 한국이 기술 중심 정책에서 지식·데이터·무형자산 기반 구조로 이동해야 한다는 국가적 메시지다. 이제 국력의 무게중심은 더 이상 '얼마나 많은 기술을 보유했는가'가 아니라 '그 기술을 넘어 어떤 지식 체계를 만들고, 이를 어떻게 자본·산업과 연결시키는가'에 좌우된다.

지난 반세기 한국은 기능과 기술, 그리고 프로세스 역량을 기반으로 압축 성장을 이뤄왔다. 1970~80년대 기능올림픽 우승국이라는 상징은 한국이 세계 누구보다 빠르게 기술을 학습하고, 공정을 정교화하며, 제조업 중심의 경쟁력을 확보한 나라였음을 보여준다. 이는 분명한 강점이었지만 동시에 구조적 한계를 남겼다. 기술은 결국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미 주어진 문제를 더 잘 해결하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반면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능력은 기술의 반복만으로는 생기지 않는다.

전통적인 성장 모델은 세 가지 층위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개인·조직·국가가 시대적 맥락 속에서만 수행할 수 있는 일신전속적 '기능'이다. 이는 고유성과 창의성의 영역이며 복제가 불가능하다. 둘째, 교육과 훈련으로 전파되고 이전 가능한 '기술'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 산업의 핵심 자산이다. 셋째, 기술을 공개하는 대신 독점권을 부여하는 '특허' 제도다. 이는 기술을 사회적 자원으로 순환시키는 장치다.

이 3단 구조도 한계가 있다. 기술과 특허는 결과물 중심이며 모두 기존 패러다임 내부에서 작동하는 체제다. 반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계하는 능력 즉 사유·과학·철학·상상력이라는 상위 능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혁신은 기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혁신은 사유하는 과학을 통해 문제를 재정의하고, 상상하는 철학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 그 위에서 기술이 구현되는 방식으로 탄생한다.

지금 한국의 스타트업·모험자본 생태계는 시장실패와 정책실패가 동시에 나타나는 구조에 놓여 있다. 민간자본은 불확실성이 크고 장기성이 필요한 영역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정부의 지원은 단기 집행 성과 중심으로 설계돼 구조적 혁신을 유도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중 실패는 오히려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근 산업정책·스타트업정책·과학기술정책·고용정책을 통합해 설계해야 한다는 새로운 흐름이 국제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강조하는 것도 시장실패와 정책실패를 함께 고려한 에코시스템(생태계) 기반 산업정책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식재산처 승격의 의미는 단순한 조직개편을 넘어선다. 지식·데이터·AI 모델·공정 노하우 같은 무형자산이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는 시대에는 기술금융·특허금융을 넘어서는 '지식-금융 융합 구조'가 국가 혁신의 핵심이 된다. 앞으로의 금융은 돈을 빌려주는 산업이 아니라 지식이 흐르고 확산되며 자본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설계하는 산업이 돼야 한다.

한국은 기능과 기술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위에서 작동할 지식과 사유의 체계, 그리고 지식 기반 금융 설계 능력이다. 이런 때 지식재산처 승격은 기술의 시대에서 지식의 시대로, 경험의 시대에서 사유의 시대로, 보호 중심 정책에서 활용 중심 전략으로 이동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의 다음 30년은 지식과 금융의 융합을 통해 혁신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식재산처의 출범은 그 전환의 출발점이다.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유니콘팩토리]
  • 기자 사진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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