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일부 바이오기업을 보면 그들의 목적이 정말 신약개발인지, 아니면 상장 자체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연구에 몰두하던 연구자가 상장 이후 떨어지는 주가와 투자자들의 압박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스타트업 단계의 바이오기업은 연구·개발비 확보가 생존의 핵심이다. 이 자금은 대부분 벤처투자사로부터 공급받는다.
문제는 벤처투자사가 투자금을 회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투자한 회사가 상장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투자자는 연구의 완성도보다 상장시점과 평가가치(valuation)에 더 집중한다. 창업자 역시 상장을 기업의 성공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기술특례상장을 통한 조기상장 열풍은 일반 투자자의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회사의 매출이나 임상시험 성공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상장 후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몇 바이오기업의 주가폭락 사례는 기술특례상장이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매출이 아닌 '기대감'으로만 평가된 기업가치는 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기술특례상장은 일정수준의 기술성과 성장가능성만 입증하면 매출이나 이익이 없어도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는 제도다. 성공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바이오산업의 특성상 좋은 취지로 시행된 제도다. 혁신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자본시장에서 쉽게 연구·개발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장을 목표로 한 단기적 '기술포장'과 과도한 기업가치 부풀리기나 기술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거나 상업화 가능성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간과되기도 한다.
이제는 바이오산업의 성장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상장 중심'이 아닌 '기술 중심'으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장에서 생존 가능한 기술은 장기적 연구·개발과 축적된 데이터,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검증절차를 통해 완성된다. 따라서 건강한 수익모델인 기술이전은 연구자가 개발한 원천기술을 제약사나 글로벌 기업에 이전해 로열티나 마일스톤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이는 상장에 의존하지 않고 기술의 객관적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는 과정이다. 성공적인 기술이전은 모두에게 지속적인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고 국가 차원의 기술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물론 기술이전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연구·개발역량이 탄탄한 기업이라면 기술이전이나 공동개발 계약을 통해 충분한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 이후 임상단계가 진척되면 전략적 제휴나 라이선스아웃을 확대해 보다 안정적인 경영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이 정착된다면 굳이 불안정한 시점에 상장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국내에서 유니콘으로 성장한 몇몇 바이오테크는 기술이전 중심의 수익모델을 기반으로 성공했고 상당한 사내 유보금과 자생적 연구·개발자금을 확보했다.
자본시장은 '기술'보다 '이야기'를 더 빨리 소비한다. 그러나 바이오산업의 본질은 스토리가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용성과 검증 가능성에 있다. 기업이 상장이라는 단기목표를 위해 과도하게 미래가치를 포장하기보다 기술이전과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전략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산업의 기반을 단단하게 만든다.
바이오산업이 반도체산업의 뒤를 이어 국가성장의 주축이 되기 위해서는 상장이익을 좇기보다 기술로 신뢰를 쌓아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 바이오산업의 진정한 경쟁력은 주가보다 그 기술이 세상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러한 기술력만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며 산업기술로 선진국의 기적을 일군 우리나라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토대다.
상장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 기술이 중심이 될 때 비로소 한국 바이오산업은 거품이 아닌 실력으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게 될 것이다.
- 기자 사진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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