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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이크로소프트 '디자이너' 생성 이미지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자본이 절실하다. 하지만 해외 투자유치 과정에서 미국계와 중국계 자본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기업의 장기 성장 경로와 글로벌 전략을 결정짓는 중대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미국 자본은 '함께 오래 가는 동반자', 중국 자본은 '빠른 성장의 촉매'로 인식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인식은 각국 자본의 투자를 받아 성장해 온 국내 스타트업·유니콘들의 실제 사례가 축적되면서 형성된 평가다.
미국 자본을 유치한 대표적인 유니콘은 △토스(비바리퍼블리카) △무신사 △당근 △야놀자 △두나무 등이 있다. 토스는 알토스벤처스와 굿워터캐피탈 등 장기 투자 성향의 VC(벤처캐피탈)로부터 꾸준히 후속 투자를 유치해 왔다.
양측의 지분율은 각각 8.53%, 5.36%로 이를 합하면 창업자인 이승건 대표(15.45%)와 비슷한 수준이다. 알토스벤처스와 굿워터캐피털은 경영 자문 역할을 맡아 토스 이사회의 굵직한 의사결정에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신사는 2019년 세계 최대규모 VC인 미국 세콰이어캐피탈을 비롯해 2023년 사모펀드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 및 자산운용사 웰링턴 매니지먼트에서 투자를 받은 바 있다. 웰링턴 매니지먼트의 국내 기업 투자는 쿠팡 이후 9년 만에 이뤄졌다.
국내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알토스벤처스는 '빠른 엑싯(투자금 회수)을 압박하지 않는다', 세콰이아캐피탈은 '한번 투자하면 끝까지 챙긴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미국 VC들 대부분 이 같은 성향으로 분류돼 단기적인 회수 압박이나 경영 간섭에 대한 문제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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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재 영역에선 中 자본이 실용적이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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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뤼튼' 생성 이미지중국 자본의 경우 정치적인 리스크와 중국 정부의 간섭 가능성이 우려 요소로 꼽히지만 뷰티나 커머스, 콘텐츠 등 소비재 산업 영역의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기 위한 실용적인 측면에선 투자유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조달한 대표적인 기업은 컬리와 에이블리코퍼레이션(에이블리)이 꼽힌다. 컬러의 경우 창업자인 김슬아 대표의 지분이 5.69% 수준인 반면 중국계 VC와 사모펀드가 소유한 지분은 26% 이상이다.
대규모 중국 자본 유치는 컬리가 새벽배송이라는 고비용 구조를 빠르게 전국 단위로 확장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과 맞물려 중국계 자본의 높은 지분 비중은 경영권 안정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로 이어졌고 IPO 등 장기 전략의 부담 요인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이블리는 지난해 중국 알리바바그룹으로부터 1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알리바바가 한국 플랫폼에 첫 지분 투자를 한 사례로, 에이블리는 3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다만 누적 적자와 함께 재무구조 개선에 실패하면서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최대 20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유치에 나선 가운데 다운라운드(기존 대비 기업가치를 낮추는 것)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다.
강석훈 에이블리 대표의 지분은 44%로 희석된 상태로, 자본잠식 지속으로 인해 지분 희석 압박이 더욱 커지고 있다. 후속 투자유치 과정에서 회사 측이 요구하는 밸류에이션과 시장이 인정하는 가치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관건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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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기업들, '기술 유출' 우려에 中 자본 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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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챗GPT 생성 이미지국내 투자업계는 중국 자본의 유입에 부정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쉽게 들어오는 자본일수록 나갈 때 더 많은 걸 들고 나간다"며 "과거 게임사의 사례를 보면 텐센트 투자를 받은 국내 기업들이 제작 간섭이나 수익 분배 갈등, 자금 회수 압박 등을 겪기도 했다"고 전했다.
특히 딥테크 기업들의 경우 '기술 유출'을 우려해 중국 자본을 유치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시리즈C 라운드를 진행할 당시 중국 VC도 검토했으나 주주들의 우려에 따라 미국·아시아·유럽계 투자자를 중심으로 투자를 받았다.
주주들이 중국 투자자의 유입을 우려하는 것은 핵심기술에 대한 접근 가능성 때문이다. 통상 투자자에게는 피투자 기업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요구할 권한이 주어진다. 피투자기업의 경영 현황과 기술력 등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자금이 절박한 상황에서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건 사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미중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K-스타트업이 견고하게 성장하려면 자본이 가진 성향과 리스크, 경영 자율성 확보 등의 가치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