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팩토리 in 2025 테크크런치 디스럽트⑩]
'성공하려면 실리콘밸리에 뿌리 내려야 하는가' 패널 토론
"지금 창업은 '특정 도시 특권' 아닌 전세계 어디서나 가능"
[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테크크런치 디지털문화부 아만다 실버랜드 선임기자(진행), 프랑스 스타트업 '라고'의 CEO(최고경영자)이자 공동창업자인 앤 바황, 벤처캐피털 '레볼루션'이 주도하는 지역 혁신 투자 펀드 '라이즈 오브 더 레스트'의 매니징 파트너인 데이비드 홀, 샌프란시스코 벤처캐피털 '시그널파이어'의 운영 파트너 토니 나자리오-크란츠/사진=류준영 기자
"오늘날 창업가에게 '실리콘밸리'란 여전히 반드시 가야 할 목적지인가?"
28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웨스트에서 열린 글로벌 스타트업·기술 콘퍼런스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현장에서 던져진 질문이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창업 친화적인 도시로 꼽히며 이른바 '스타트업의 수도'로 불렸던 곳, 각종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실리콘밸리가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다. △AI(인공지능)를 통한 생산 효율화 △온라인 협업툴의 고도화와 원격근무의 일상화 △미국 내 이민자 퇴출과 비자 제한 △글로벌 자본의 대이동 등으로 인해 그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날 빌더스 스테이지에서는 '성공하려면 실리콘밸리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이 열려 큰 관심을 모았다.
패널로는 사용량 기반 청구 플랫폼을 개발·운영하는 프랑스 스타트업 '라고'의 CEO(최고경영자)이자 공동창업자인 앤 바황, 워싱턴 D.C. 소재 벤처캐피털 '레볼루션'이 주도하는 지역 혁신 투자 펀드 '라이즈 오브 더 레스트'의 매니징 파트너인 데이비드 홀,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투자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벤처캐피털 '시그널파이어'의 운영 파트너 토니 나자리오-크란츠가 참석했다. 토론 진행은 미국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TechCrunch)'의 디지털문화부 아만다 실버랜드(Amanda Silberling) 선임기자가 맡았다.
(왼쪽부터)프랑스 스타트업 '라고'의 CEO(최고경영자)이자 공동창업자인 앤 바황, 벤처캐피털 '레볼루션'이 주도하는 지역 혁신 투자 펀드 '라이즈 오브 더 레스트'의 매니징 파트너인 데이비드 홀, 샌프란시스코 벤처캐피털 '시그널파이어'의 운영 파트너 토니 나자리오-크란츠/사진=류준영 기자 -실리콘밸리가 여전히 스타트업의 중심지로 남아 있는지, 혹은 새로운 대안이 생기고 있는지 궁금하다. ▲토니 나자리오-크란츠=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실리콘밸리 근처에 반드시 있어야 했다. 투자자, 인맥, 기술이 전부 갖춰진 '올인 실리콘밸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자본이나 인재가 완전히 균등하게 분포된 건 아니지만 점점 전 세계적으로 평준화되고 있다. 이제는 '실리콘밸리에 있느냐'보다 AI(인공지능) 개발 인프라를 얼마나 잘 갖췄느냐가 새로운 경쟁 포인트가 되어가고 있다.
▲데이비드 홀=실리콘밸리가 여전히 혁신의 중심이긴 하다. 하지만 과거처럼 '이곳에 직접 와야만 성공한다'는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자본과 네트워크 접근성이 지역적으로 한정돼 있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 어디서든 투자와 협업이 가능해졌다. 우리 '라이즈 오브 더 레스트' 펀드는 실리콘밸리·뉴욕·보스턴 같은 기존 3대 허브 밖의 도시, 예컨대 오하이오·피츠버그·오스틴·내슈빌·디트로이트·캔자스시티 등에 있는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들 도시는 우수한 대학과 기업 인재는 있지만 초기 단계 자본이 부족했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원격 근무 확산 덕분에 이제는 이런 지역에서도 훌륭한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있다. 지금의 창업은 '특정 도시의 특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나 가능한 일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앤, 두 분과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다. 프랑스에서 회사를 운영하다 실리콘밸리로 옮긴 이유가 무엇인가.
▲앤 바황=저는 두 분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저는 프랑스에서 연매출 4억달러(약 5740억원)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다가 18개월 전 실리콘밸리로 왔다. 이유는 단 하나다. '글로벌 기업을 만들고 싶어서'다. 이곳에서는 제품 개발부터 시장 진출까지 모든 과정이 빠르고, '반드시 크게 성공해야 한다'는 강한 자극을 받는다. 물론 유럽에도 뛰어난 엔지니어가 많지만 미국 투자자들과의 네트워크, 실전 경험, 그리고 경쟁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여전히 실리콘밸리만의 강점으로 통한다. 이곳은 분명 치열하고, 때로는 피곤할 만큼 시끄럽지만 모든 가능성을 걸고 도전하고 싶다면 결국 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토니, 방금 앤이 말한 '실리콘밸리만의 DNA'를 다른 지역에서도 재현할 수 있나.
▲토니 나자리오-크란츠=실리콘밸리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하나의 '운영시스템(OS)'처럼 작동한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문화, 사업 전개의 속도감, 그리고 전 세계 인재가 모이는 밀도가 여전히 실리콘밸리의 핵심 경쟁력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와 시스템은 이제 다른 지역에서도 충분히 학습하고 재현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실리콘밸리 밖에서 새로운 산업 중심지가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실제로 그런 흐름이 있나.
▲데이비드 홀=헬스케어 산업을 보면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라는 지역 도시를 기반으로, 메이요 클리닉은 미네소타주 로체스터라는 중소도시를 거점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지역에서 출발했지만 의료기술과 연구, 환자 중심 시스템을 혁신해 세계적인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스타트업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이제 핀테크는 탬파베이, 프롭테크는 오하이오처럼 산업별로 고유한 지역 허브가 형성되고 있다. 즉, 지역의 산업 특성이 새로운 창업 기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기업 중 약 44%는 여성 또는 유색인종 창업가가 이끌고 있다. 예를 들어 애틀랜타처럼 흑인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다양한 배경의 창업가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이들은 가족과 지역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창업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원격·하이브리드 근무가 확산되면서 기업의 '위치 개념'도 많이 바뀌었다. 이런 변화가 창업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토니 나자리오-크란츠=코로나19 이후 하이브리드 근무는 완전히 일상화됐다. 초기 시드 단계에서는 팀이 한곳에 모여 있어야 속도가 나지만 시리즈 B·C 단계로 성장할수록 분산형 구조가 오히려 효율적일 때도 많다. 결국 회사의 성장 단계에 맞게 조직 설계와 운영 방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며, 그 과정에서 반드시 실리콘밸리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AI 인프라, 컴퓨팅 자원, 대규모 데이터셋은 여전히 실리콘밸리에 집중돼 있는 것은 맞다. 그래서 재능 있는 인재들은 지금도 가장 혁신적인 곳, 실리콘밸리로 몰린다. 하지만 동시에, 전 세계 어디서든 한 명의 개발자가 자신의 방에서 거대 AI 스타트업을 일으킬 수도 있는 시대에 와 있다. 바야흐로 AI시대,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지역이라는 물리적 조건보다, 고도의 성능으로 차별화된 AI를 구현할 온라인 연결성과 학습 속도에 달려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