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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窓]스타트업 생태계에 드리워진 '연대책임의 그림자'

최성진 스타트업성장연구소 대표 기사 입력 2025.08.2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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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스타트업성장연구소 대표
최성진 스타트업성장연구소 대표



스타트업 투자는 본질적으로 고위험·고수익이다. 실패확률이 높은 걸 알면서도 투자하고 그 투자로 성장의 기회를 얻은 스타트업이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에 성공하면 투자금액 대비 수십 배에서 수천, 수만 배까지도 회수하는 사례가 나온다. 이런 소수의 성공사례로 다수의 실패한 투자금액까지 상쇄하고도 남는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벤처캐피탈의 본질이다. 당연히 투자의 실패확률을 낮추고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지만 실패를 용인하는 과감한 투자가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본 전제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 원칙이 흔들린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신한캐피탈이 프롭테크 스타트업 어반베이스의 대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2017년 5억원을 투자받은 계약내용에 회사의 '사업추진이 불가능해진 경우' '투자원금 및 연복리 15%를 가산한 금액'을 상환해야 하고 대표는 '연대해 책임을 부담'한다는 조항에 문제가 없다며 12억5000만원은 대표 개인이 상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어반베이스는 많은 투자를 유치하면서 성장했으나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2023년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열심히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이른바 '성실 실패'임에도 대표 개인에게 연대책임을 물은 것이다.

문제는 이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벤처캐피탈과 금융사가 투자금 회수를 위해 창업자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가압류를 진행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생태계에서는 여전히 창업자의 상당수가 투자계약 과정에서 연대보증을 요구받는다고 한다. 이는 투자자의 리스크를 창업자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근본적 질문을 낳는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창업자의 연대책임 관행은 점차 축소되는 추세였기에 이번 판결의 여파는 더욱 크다. 정부는 창업실패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재도전을 장려하기 위해 2018년 정책금융 분야에서 대표자 연대보증을 전면폐지했다. 2023년에는 벤처투자법령 개정으로 투자계약에서 제3자(창업자 등)에게 회사의 의무를 연대부담시키지 못하도록 금지했다(일부 고의·중과실이 있는 '악의적 행위'는 예외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벤처투자법을 적용받지 않는 신기술금융회사 등의 투자주체와 투자와 대출의 경계에 있는 다양한 계약형태에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번 어반베이스 사건의 신한캐피탈도 벤처투자법을 적용받지 않는 금융위원회 소관이었다.

벤처투자의 발상지인 미국의 경우 투자계약시 진술과 보장사항(R&W)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창업자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벤처대출의 경우도 회사자산 담보 등이 일반적이지 창업자 개인의 무제한 보증은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열심히 노력하다 실패한 창업자 개인에게까지 악착같이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받고 싶은 스타트업은 없을 것이기에 투자자 스스로 자제한다. 창업자 역시 도덕적 해이가 있다고 평판이 떨어지면 다시는 투자받을 수 없기 때문에 투자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신뢰와 평판이 생태계를 지탱하는 시스템의 일부인 것이다.

창업자 연대책임은 단순한 계약조항이 아니라 창업의욕과 생태계 역동성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행위다. 실패에 대한 무한책임은 도전을 가로막는다. 또한 창업자가 기피하는 이런 계약을 요구하는 투자관행은 투자생태계가 축소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투자자 역시 좋은 창업자들을 잃는 셈이다.

때문에 제도개선은 물론 신뢰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연대책임 금지의 대상을 확대하고 투자계약 형태를 공시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위험을 감수하는 벤처투자와 불가능한 혁신에 도전하는 스타트업, 서로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연대책임의 관행을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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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최성진 스타트업성장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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