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글로벌 스타트업씬'은 한주간 발생한 주요 글로벌 벤처캐피탈(VC) 및 스타트업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이에 더해 국내 스타트업 시장에 미칠 영향과 전망까지 짚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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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스펙트럼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ENA
미국 국방 AI(인공지능) 분야 입찰에서 한 소규모 스타트업이 빅테크 기업인 메타에 소속된 스케일AI를 꺾고 1조원 넘는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 스타트업에 소속된 직원 상당수가 자폐 스펙트럼에 속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29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인에이블드 인텔리전스'(Enabled Intelligence Inc.)는 최근 미국 국가지리정부국(NGA)로부터 7억800만달러(한화 약 1조400억원) 규모의 7년짜리 계약을 따냈다.
이번 계약은 NGA 역사상 최대 규모 데이터 라벨링 프로젝트로, 미군의 대표적인 AI 표적식별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메이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위성·항공 이미지를 바탕으로 비행기와 탱크, 선박, 사람 등 객체를 정밀하게 표시하고 라벨빙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여기서 수집한 데이터는 컴퓨터 비전 기반의 군사 AI 시스템을 학습시키는데 사용된다.
이번 수주로 인에이블드 인텔리전스가 국방·정보기관용 AI 데이터 운영 분야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했다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회사 규모보다 전문성과 다양한 인재 구성이 국가 안보 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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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있는 사람이 코딩 더 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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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칸트 인에이블드 인텔리전스 CEO(오른쪽)는 "자폐증 환자를 사이버 인텔리전스 업무에 채용하는 이스라엘 프로그램을 읽고 크게 영감을 받아 회사를 설립했다"며 "자폐 스펙트럼 인재들은 집중력과 패턴인식, 퍼즐해결 능력이 탁월해 AI 알고리즘을 훈련하는 반복적이고 세밀한 작업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사진=블룸버그인에이블드 인텔리전스는 미국 버지니아주 폴스처치에 본사를 둔 AI 업체로 2020년 설립됐다. 전체 직원의 60%가 자폐 스펙트럼에 속한 인재들로 알려져 있다. 종전 30명 남짓했던 직원 수는 최근 136명으로 늘었다. 자폐 스펙트럼 직원 채용을 위해 온라인 평가를 없앴고, 근무 시간도 단축했다.
피터 칸트 인에이블드 인텔리전스 CEO(최고경영자)는 "자폐증 환자를 사이버 인텔리전스 업무에 채용하는 이스라엘 프로그램을 접한 뒤 크게 영감을 받아 회사를 설립했다"며 "자폐 스펙트럼 인재들은 집중력과 패턴인식, 퍼즐해결 능력이 탁월해 AI 알고리즘을 훈련하는 반복적이고 세밀한 작업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자폐증 등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 코딩을 더 잘한다'는 주장은 테크 업계 오랜 속설이다.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서번트 증후군' 등이 대표적인 근거로 쓰인다.
최근 실리콘밸리 등에선 ADHD·자폐증 등을 장애로 보지 않고 인간 뇌 활동의 새로운 유형으로 분류해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라고 부른다.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마이크로소프트·델 테크놀로지스 등 업체들은 이미 신경다양성 인재 확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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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공룡·스티커 큐브·깡통 휴대폰'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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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티커박스AI가 대표적인 아날로그 산업인 장난감까지 깊숙이 침투하면서 글로벌 벤처투자 업계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양한 AI 기반 어린이용 장난감 중에서도 영상과 거리를 두게 하는 방식의 제품들이 특히 호평받고 있다.
글로벌 기업정보 플랫폼 크런치베이스는 올 연말 홀리데이 시즌을 맞아 AI 기반 대화형 공룡 인형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이 인형은 스타트업 '본두'(Bondu)가 기획·마케팅한 것으로 아이들이 안전하고 상호작용적인 놀이를 통해 배우고 상상하며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설계된 감정 지능형 장난감이다.
가격이 199.99달러(한화 약 29만5000원)로 저렴하지 않지만 '영상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스크린과 작별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라는 홍보 마케팅이 부모들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공룡 인형은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질문에 답하고 사실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학습을 도와준다. 32개 언어가 지원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양치·취침 등을 독려하기 위한 알림 기능으로 활용도 가능하다. 메이커스펀드와 삼성벤처스, 부스트VC, 파운더스 등이 시드 라운드를 통해 530만달러를 투자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로이비'(Roybi)도 화면 없는 대화형 AI 로봇을 앞세워 최근 43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기반을 둔 이 회사가 개발한 이 로봇은 영어·스페인어·프랑스어·중국어 등 언어뿐 아니라 수학·과학 등 학습을 돕는다.
뉴욕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스티커박스'(Stickerbox)가 내놓은 제품은 회사 이름처럼 스티커가 나오는 기기다. 아이들이 음성으로 이미지를 지시하면 작은 정육면체 기기에서 색칠공부 도안 스티커가 인쇄돼 나온다. 카메라나 스크린이 탑재돼 있지 않아 과도한 스크린 노출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스타트업 '틴캔'(Tin Can)이 내놓은 어린이용 'Wi-Fi 전화기'도 같은 맥락이다. 유선전화 스타일의 이 제품에는 화면이 없다. 두 회사는 최근 VC들로부터 각각 700만달러, 350만달러 투자금을 유치했다.
아직 투자 규모는 크지 않지만 AI 장난감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크레덴스 리서치에 따르면 AI 장난감 시장 규모는 2024년 22억달러에서 2032년 64억달러로 3배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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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미국 이민, AI 해결사가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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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토안보국 전경/AFPBBNews=뉴스1복잡하고, 어렵고, 비싼 미국 이민 과정 전반을 돕는 AI 기반 서비스가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한 스타트업이 미국 이민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청 가능한 비자 유형을 정확히 알려주고, 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통해 빠르고 저렴하게 이민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했다.
미국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지난달 말 열린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콘퍼런스에서 '정책 및 보호' 부문 최고 피치상을 받은 스타트업 '저스티가이드'(JustiGuide)를조명했다.
나이지리아 태생인 오바 테루 저스티가이드 설립자는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뒤 이민 절차를 밟았다. 기술 인력용 H1-B 비자를 받은 뒤 영주권을 취득한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이민자를 돕기 위한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사용자가 4만7000명을 넘어섰다. 주 고객은 이민자를 고용하려는 스타트업 창업자, H1-B 비자를 보유하고 있는 개인, 창업을 계획 중이 유학생 등이다.
오바 테루는 "저스티스의 핵심 AI인 '도로레스'는 미국 이민법을 이해하도록 지속적으로 정제되는 도메인 특화형으로 현재 12개 언어 번역 기능을 제공한다"며 "우리 서비스를 활용하면 이민자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미국 이민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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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 기업가치 평가받은 유럽 대표 회계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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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회계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페니레인'(Pennylane)의 홈페이지프랑스의 회계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페니레인'(Pennylane)이 글로벌 투자사들의 잇단 러브콜을 받고 있다. 미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유럽 주요국의 공공·민간 부문 움직임과 맞물려 급성장하는 업체에 돈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페니레인은 최근 진행 중인 투자 라운드에서 기업가치 42억5000만달러(한화 약 6조3000억원)를 인정받았다. 이는 직전 펀딩이 있었던 지난 4월 평가액(21억8000만달러)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아진 것이다.
이 스타트업은 세쿼이어캐피탈과 알파벳의 성장펀드인 캐피털G의 투자를 받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기반의 크로스오버 펀드인 TCV가 주도하는 2억달러 규모 추가 투자를 논의하고 있다.
2020년 설립된 페니레인은 기업 회계를 위한 다양한 도구를 하나의 온라인 대시보드에 통합해 제공하는 서비스를 한다. 회사 측은 프랑스 내 6000개 이상 회계법인과 50만개 넘는 중소기업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엔 독일에 진출하는 등 유럽 시장 확장에 본격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