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죽을 둥 살 둥 매달렸던 스타트업이 망했다. 폐업 절차를 밟는다고 끝이 아니다. 자산이 많아 '내돈 내사업'한 창업자가 아니라면 투자사로부터 막대한 청구서가 날아올 수 있다. 벤처 창업자를 옥죄는 연대책임 제도가 사라진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연대 책임의 굴레는 2025년에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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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국내 스타트업이 벤처캐피탈(VC, 벤처투자회사·신기술사업금융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 투자사별로 상이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관행이 법적 분쟁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6일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여러 VC가 한 회사에 공동 투자하는 '클럽딜'에서도 각 투자자와 개별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방식은 투자사별 요구를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투자 유치가 거듭될수록 주주·계약서 수가 늘어나 조항 간 충돌 가능성도 커진다. 이로 인해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개별 투자자 전원의 사전 동의를 받는 과정도 복잡해진다. 투자사 중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의사결정이 무산되거나 장기간 지연되는 경우도 많다.
반면 실리콘밸리에서는 투자 라운드별로 하나의 통합 계약서(term-sheet)를 작성해 모든 투자자가 서명한다. 과반수 또는 일정 비율 이상 찬성 시 의사결정이 진행되도록 규정해 소수 반대로 경영이 마비되는 일을 막는다. 모든 투자사가 동일 조건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분쟁 소지가 낮고 의사결정도 신속, 투명하다.
최근 이슈가 된 신한캐피탈-어반베이스 간 소송도 다른 투자사와 달리 창업자 개인의 연대책임 조항을 넣으면서 법정 다툼으로 번진 사례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이원화된 감독 체계다. 벤처투자회사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관리를 받으며 2023년 벤처투자촉진법 시행령 개정 이후 연대책임 조항을 계약서에서 제외하고 있다. 반면 신한캐피탈과 같은 신기술사업금융회사(신기사)는 금융위원회의 관리를 받으며 여신전문금융업법의 적용을 받아 연대책임 조항을 넣을 수 있었다.
구태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부의장은 "벤처투자회사와 신기사가 모두 VC로 불리지만 감독 부처가 달라 연대책임 해석이 다르다"며 "정부가 창업자의 과도한 책임을 제한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스타트업의 법적 위험 완화와 창업 촉진을 위해 투자자 간 이해관계를 사전에 조율하고 다수결 원칙을 적용하는 '통합 계약'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벤처투자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개선을 시도했지만 현장에서는 투자사가 각사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조항을 추가하거나 삭제하면서 사실상 '표준'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투자 단계가 같아도 계약서 세부 내용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고 투자사 간 조항이 상충하기도 한다"며 "현재로선 계약 체결 시 조항을 면밀히 검토하는 수밖에 없어 법률 검토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