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투자는 약? 독?" 상반된 전략의 두 라이벌 [비하인드 칩스]

고석용 기자 기사 입력 2025.07.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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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용의 비하인드 칩스]

[편집자주] 글로벌 공룡 기업들이 즐비한 반도체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스타트업들이 있습니다. 아직 작은 기업들이지만, 차별화된 기술력과 전략으로 치열하게 시장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반도체 스타트업들의 흥망성쇠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드립니다.
[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퓨리오사AI와 리벨리온이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하는 이미지. /일러스트=챗GPT
퓨리오사AI와 리벨리온이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하는 이미지. /일러스트=챗GPT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대기업의 투자는 엄청난 기회로 인식됩니다. 대기업이 투자와 함께 고객이 되거나, 못해도 그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업을 확장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죠. 이른바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입니다.

그런데 대기업 투자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대기업 투자자가 경영에 심각하게 개입하거나 경쟁사를 고객으로 만들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스타트업은 대기업에서 투자를 유치할 때 신중한 전략적 고민을 거듭합니다.

NPU(신경망처리장치)를 설계하는 팹리스 스타트업 라이벌인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도 대기업 투자에 대해 상반된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리벨리온이 대기업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시너지를 추구하는 반면, 퓨리오사AI는 비교적 대기업 투자를 받지 않았습니다. 두 기업의 투자유치 전략을 비교해봤습니다.


고객을 투자자로…주주 시너지 전략 세운 리벨리온


유영상 SK텔레콤 CEO(좌측)와 리벨리온 박성현 대표(우측)가 지난해 리벨리온-사피온 합병 계약식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리벨리온
유영상 SK텔레콤 CEO(좌측)와 리벨리온 박성현 대표(우측)가 지난해 리벨리온-사피온 합병 계약식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리벨리온
리벨리온은 초기부터 대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오며 성장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현재 리벨리온은 SK그룹이 26%, KT그룹이 9% 안팎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요. 단순히 SI(전략적 투자자)를 확보하는 것 이상으로, 상당한 수준의 지분을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리벨리온에 먼저 투자한 건 KT그룹입니다. 리벨리온 반도체의 잠재고객이기도 한 KT그룹은 KT, KT클라우드, KT인베스트먼트 등을 통해 시리즈A와 시리즈B 라운드에 2년에 걸쳐 665억원을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SK그룹과의 관계는 SK그룹의 자회사였던 사피온을 합병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사피온은 SK텔레콤 등 SK그룹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리벨리온이 사피온을 합병하면서 SK그룹은 리벨리온의 주요 주주(창업자 제외)가 됐습니다.

기업주주들은 리벨리온의 적극적인 구매자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리벨리온의 2023년 매출은 99.7%가 KT그룹에서 발생했습니다. 2024년 매출은 53.3%가 SK그룹에서, 25.8%가 KT그룹에서 나왔죠. 최근 SK텔레콤이 '에이닷' 등 주요 AI서비스에 리벨리온 반도체를 쓰겠다고 밝히면서 SK그룹향 매출은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밖에 리벨리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에서도 투자를 받았습니다. 아람코는 CVC(기업형 벤처캐피탈)인 와에드벤처스를 통해 리벨리온에 20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지분율은 적지만 아람코의 데이터센터 사업과 맞물리면서 둘 사이 밀접한 협력이 예고된 상황입니다. 아람코 역시 지난해부터 리벨리온의 PoC(개념검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투자자 경영 간섭 최소화…독자생존 퓨리오사AI


올해 초 메타의 퓨리오사AI 인수 제안이 알려지자, 국회에서까지 관련 논의가 진행됐다. 사진은 지난 3월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오른쪽)와 함께 최대주주(창업자 제외)인 DSC인베스트먼트의 윤건수 대표(왼쪽)가 함께 출석했다. /사진=국회 영상 갈무리
올해 초 메타의 퓨리오사AI 인수 제안이 알려지자, 국회에서까지 관련 논의가 진행됐다. 사진은 지난 3월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오른쪽)와 함께 최대주주(창업자 제외)인 DSC인베스트먼트의 윤건수 대표(왼쪽)가 함께 출석했다. /사진=국회 영상 갈무리
반면 퓨리오사AI는 VC(벤처캐피탈) 등 주로 재무적 투자자(FI)들의 자금을 유치하며 성장했습니다. 창업 초기에 네이버가 퓨리오사AI에 투자했지만, 두 회사가 오픈이노베이션이라고 할만한 협력을 하진 않아 사실상 FI로 평가됩니다.

이는 퓨리오사AI의 전략적 선택입니다. 퓨리오사AI도 리벨리온처럼 대기업 투자자들의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성사되진 않았지만 메타의 인수 제안도 같은 맥락입니다. LIG넥스원과 크래프톤도 퓨리오사AI 투자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투자가 성사되지 않은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투자자들이 먼저 의사를 철회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퓨리오사AI가 협상에서 많은 걸 양보할 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문일까요. 지난해 퓨리오사AI의 매출액은 30억원으로 리벨리온(103억원)보다 적습니다. 리벨리온처럼 반도체를 믿고 구매해줄 주주들이 없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엔비디아의 시장 장악력이 크고 진입장벽이 높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덕에 반도체 설계나 개발에서 자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리벨리온이 주주인 SK텔레콤과 AI 모델 최적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면, 퓨리오사AI는 마음대로 파트너를 고를 수 있습니다. 퓨리오사AI는 최근 LG AI연구원, 업스테이지, 플리토, 딥핑소스, 딥노이드 등과 반도체 최적화를 진행했습니다. 반도체를 구매하는 건 이들이 아니지만, 최적화된 AI서비스가 많아지면 데이터센터들도 반도체 탑재를 고려하게 됩니다.


리벨리온 프리IPO·퓨리오사AI 시리즈C에서도 전략 유지


두 기업은 당분간은 이런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리벨리온은 최근 프리IPO라운드 투자유치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라운드 역시 SI 투자가 목표라고 합니다. 리벨리온 관계자는 "자금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며 "전략적으로 협업할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기 위해 투자유치에 나섰다"고 했습니다.

퓨리오사AI도 조만간 시리즈C 브릿지 라운드 투자유치를 마감할 계획입니다. 이번 라운드 투자자도 대부분이 FI입니다. 현재 대기업 한 곳이 퓨리오사AI에 투자를 조율하고 있긴 한데요. SK, KT처럼 ICT 산업에 있는 기업은 아닙니다. 리벨리온과 SK·KT만큼 밀접한 관계가 되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두 기업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도 명확합니다. 리벨리온은 주주가 아니어도 다른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SK와 KT 외 고객 매출이 2023년 0.3%에서 2024년 10.9%로 늘어났지만 아직은 미미한 비율입니다. 지난해 실리콘밸리 사무소에 이어 올해 초 일본 법인까지 설립한 만큼 올해는 성과가 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퓨리오사AI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많은 AI 모델 개발사, 데이터센터 등과 협업에 성공해 대기업이 매력을 못 느껴서 투자하지 않은 게 아니란 걸 증명해야 합니다. 현재 국내 대기업 1곳, 해외 글로벌 기업 1곳과 상당한 수준의 계약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해당 계약이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훗날 두 기업의 전략 중 어떤 것이 효율적이었다 평가받을까요? 이에 따라 후배 팹리스 스타트업들의 성장 공식도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후배 스타트업들이 두 경영전략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려면, 국내 대기업들의 벤처투자가 훨씬 활발해져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스타트업 투자에 소극적이면 리벨리온 같은 전략을 또 세우기 쉽지 않겠죠. 두 라이벌이 모두 글로벌에서 성공해서, 후배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성장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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