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방문했던 가평 일대 피해 현장은 참혹했다. 하천이 교량을 넘쳐 인근 마을로 흘러들었고, 가옥은 힘없이 휩쓸렸다. 무너진 집 앞에 선 주민들의 탄식은 단순한 재산 손실이 아니라 삶 전체의 붕괴였다. 무엇보다 일가족의 생명을 앗아간 산사태와 급류는 가장 원망스러웠다.
피해 지역 곳곳에서는 자원봉사자와 군인들이 신속하게 복구에 나서고 있었다. 쓰러진 가옥을 정리하고 도로를 복원하는 모습은 든든했지만, 주민들의 마음속 불안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복구가 끝났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 다시 쏟아질지 모를 폭우 앞에서, 주민들은 '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서울은 몇 년 전 강남역 침수 경험을 계기로 대규모 지하 방수로 건설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지방의 소하천과 농경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상황이 다르다. 고지대로 이주하기 어려우며, 오래된 주택과 기반시설은 홍수에 취약하다. 어렵게 복구가 이뤄져도 같은 규모의 호우가 다시 오면 피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기후위기 속에서 호우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취약계층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집을 잃으면 대체 거처를 마련하기 어렵고, 농경지를 잃으면 곧바로 생계가 막막해진다. 재해는 자연현상이지만, 그 피해가 누구에게 집중되느냐는 사회 구조가 결정한다.
일본 구마모토현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20년 구마강 유역에서 기록적 폭우로 제방이 무너지고 마을이 침수되면서 60명 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요양시설과 고령 인구가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구마강 홍수 방어 비전'을 세워 제방 강화, 저류지 확보, 실시간 수위 모니터링, 취약계층 대피 지원 제도를 종합적으로 추진했다. 단순한 하천 정비를 넘어, 지역 맞춤형 방재와 사회적 약자 보호를 결합한 다층적 홍수 방어 전략으로 참고할 만한 사례이다.
중국 고대의 치수 공법인 제방을 쌓고, 토사를 파내며, 물길을 트는 원리는 오늘날에도 시사점이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제방과 준설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치수(治水)다. 매년 막대한 복구비용을 쓰면서도 피해가 되풀이된다면, 이는 단순히 기후 탓이 아니라 제도적 부실 탓이다. 동일한 규모의 홍수가 다시 발생하더라도 견딜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지켜내기 위한 기술적·제도적 대안이 시급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는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AI기반 돌발홍수 예·경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괴물폭우로 인한 급류의 위험을 조기에 탐지하고 주민에게 신속히 알려 대피시키는 기술이다. 재난 자체를 막을 수는 없더라도, 희생을 줄이는 길은 분명히 있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골고루 잘 사는 나라"는 단순한 소득 균형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국 어디서도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 안전한 나라, 안전이 분배보다 먼저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권리를 보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선진국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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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정일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하천연구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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