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혁신의 시대, 해군보단 '해적'이 필요한 이유

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혁신정책연구센터장) 기사 입력 2024.02.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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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칼럼]


몇 년 전 실리콘밸리를 방문했을 때다. 스탠포드대학 한 창업팀에 투자하던 투자자들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실리콘밸리 전문가들이 어떻게 수많은 창업팀들의 옥석을 가리는지 그 비법을 물었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계량화된 지표가 있나 해서 질문한 것인데 그 대답이 의외였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창업자가 '창업한 이유'였다.

어떤 이유가 중요한지 되물었더니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또는 '자기 회사를 갖고 싶어서'보다 '기존의 시스템이 답답해서' 창업하는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기존 기업시스템에서 추진하기 힘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아서 창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경우 창업자들은 기존 시스템과 다른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창업을 선택하는 것이며, 많은 경우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애플 창립 초기인 1983년 지금의 맥(Mac)에 해당되는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의 일이다. 잡스는 매킨토시 개발팀을 본사에 두지 않고 건너편 빌딩에 따로 사무실을 마련하며 해군이 아닌 해적이 되길 주문했다. 그는 '해군에 입대할 바에는 해적이 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며 개발자들이 새로운 꿈을 꾸고 기존의 가치를 뒤집을 것을 강조했다.

사실 해군은 기존 가치를 지키는 존재이기 때문에 관습에 얽매인 사고를 하기 쉽다. 그러나 해적은 관습에 얽매이기보다는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한 모험을 즐기는 존재다. 매킨토시 개발팀은 당시 컴퓨터 업계의 주류이자 해군이라고 할 수 있는 IBM에 대한 반기를 들기 위해 해적 깃발까지 만들었다. 해적의 상징인 검은 안대 대신 애플의 상징인 무지개색 사과를 한쪽 눈에 그려 넣었다고 한다.

직원들은 이 해적깃발을 회사에 걸고, '해적이 되자'는 구호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근무했다. 잡스는 스스로를 해적왕이라 칭하며, 팀원들에게는 해적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해적정신이 가장 혁신적인 컴퓨터 중 하나로 꼽히는 매킨토시의 비법이다.

우리가 창업정신을 독려하고 정부가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창업이 일자리를 만들어내서가 아니다. 대기업에 취업하고 의사나 변호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해군이라면, 창업가들은 기존 시스템이 답답해서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해적들이다. 물론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멈춰 있지 않다.

인공지능 같은 디지털 기술들은 제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있으며,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대유행이 주기적으로 찾아오고, 탄소중립 같은 국제 규약이 기존 관세장벽을 대체하고 있다. 또 최근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무역 갈등이 핵심기술을 서로 공유하지 않는 기술패권 시대를 불러왔다. 이런 변화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시스템만을 고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변화를 주고 바뀐 시스템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장기적인 안정성과 위계질서 같은 유교 문화에 익숙하다. 때문에 많은 정책들이 창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하고 저변을 넓히는 데 집중돼왔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시대에 우리나라가 글로벌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기존 가치를 뒤집고 혁신을 추동할 '해적단'이 필요하다.

해적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창업정책도 혁신해야 한다. 부처 간 이해관계를 벗어난 정부 협업, 규제 샌드박스의 효과적인 작동, 나눠주기식이 아닌 옥석을 가리는 재정지원 등 다양한 창업정책의 혁신을 통해 '해적단'이 변화를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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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혁신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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