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창업가의 정신건강'

최성호 AI엔젤클럽 회장 기사 입력 2024.0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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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팩토리 3기 전문위원 최성호 AI엔젤클럽 회장
유니콘팩토리 3기 전문위원 최성호 AI엔젤클럽 회장
온라인 게임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1994년, 고 김정주 회장은 자본금 6000만원으로 게임회사를 설립한다. 그가 설립한 기업 넥슨은 시가총액 24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2022년 2월, 김 회장은 갑작스레 세상을 등진다. 이전부터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소식과 함께였다.

한국 창업계의 큰 별이었던 김 회장의 사망 소식은 창업가들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김 회장은 역경을 극복하고 넥슨을 성공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스트레스와 정신건강 문제의 심각성은 간과됐다.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 기관인 디캠프와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연구팀이 2022년 발표한 '국내 스타트업 창업가 2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간 수준 이상의 우울을 겪는 창업가의 비율은 32.5%에 달했다. 전국 성인평균 18.1%보다 14%포인트 높은 수치다. 불안, 수면문제, 문제성 음주를 경험하고 있는 창업가의 비율도 모두 일반 성인들보다 높았다. 특히 자살 고위험군은 전체의 21%에 달할 정도로 심각했다.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은 자금압박 및 투자유치(44.6%), 조직관리(20.3%), 실적부진(19.6%), 과도한 업무량(5.5%) 등으로 조사됐다. 지난해부터 금리가 높아져 투자유치가 어려워지고 실물경제 위축으로 경기가 침체돼 실적을 내기 쉽지 않아진 만큼 창업자의 스트레스는 더욱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조급해진 창업가는 어떻게든 투자·매출 등 실적을 내겠다며 발로 뛰겠지만, 결국 번아웃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더 큰 문제는 다수의 창업가들이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각한다 해도 이를 외부에 드러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창업가의 정신적 문제가 기업의 외부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내부적으로도 리더십을 무너뜨리는 요소가 될 수 있어서다. 이에 창업가들은 대부분 자신이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고 포장하면서 음주 등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만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고 만다.

창업가의 정신건강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기업의 성장과 지속가능성, 사회와 산업의 혁신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부와 투자자, 창업지원기관이 창업가들의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사회적인 협력을 통해 포괄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다행히 2023년 6월, 정부기관 및 창업생태계 주요 구성원들이 협업해 '창업가의 마음상담소'를 출범시켰다.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투자업계도 창업가의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일차적으로는 창업가의 정신건강이 기업의 성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만들어가는 창업생태계는 우리 사회 전체를 혁신하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벤처투자업계의 사회적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창업생태계 문화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실패를 용인하고 이를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창업 실패가 창업가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면 생존을 위한 경쟁과 이에 따른 정신건강 훼손은 막기 어렵다.

기업의 성공을 위해 창업가가 개인의 삶을 포기하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는 문화도 개선돼야 한다. 창업가 개인의 웰빙이 사라진다면 기업의 조직문화는 물론 기업이 미칠 사회적 영향력도 부정적일 수 있다. 실패가 허용되고 개인의 삶이 포기되지 않을 때 더 건강한 영향력을 가진,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한 스타트업들이 많아질 것이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 기자 사진 최성호 AI엔젤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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