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창업자의 책임

손보미 스타씨드 대표 기사 입력 2025.06.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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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칼럼]상실의 시간을 지나 창업자가 짊어진 '은혜의 부채'를 다시 돌아보며

손보미 스타씨드 대표
손보미 스타씨드 대표

최근 한 달간, 평소 존경하던 초기 엔젤투자자는 물론이고 필자와 가까운 친척 한 분이 연이어 하늘나라로 떠나가셨다. 쓰라린 상실감이 컸지만 노트북 앞에서 울며 문서를 마무리하기도 하고 병원 침대에 누운 채 휴대폰으로 자료를 보며 마감이 임박한 업무를 이어가는 일이 반복됐다. 창업자로 살아간다는 건 단지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창업자는 흔히 '혁신의 주체'로 소개되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하지만 창업자의 본질은 '빚을 지고 출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빚'은 남의 돈을 차입받거나 투자받는 자금 그 이상이다. 초기 투자자들의 믿음, 부족한 제품을 감내해 준 고객의 인내, 불확실한 미래를 함께 견디기로 한 팀원들의 결단 이 모든 요소가 창업 초기에 얻게 되는 무형의 '신뢰 기반 부채'다.

창업자는 매일 그 빚을 성과로, 실행력으로, 결과로 갚아나가야 한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신뢰의 무게를 안고 일한다는 것은 감동적이면서도 동시에 매 순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삶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무게는 창업자에게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들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다짐, '초심과 비전을 잊지 말자'는 내면의 약속이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그 신뢰는 숫자로도 증명돼야 한다. 투자자의 자본이 수익으로 돌아오고, 고객이 더 나은 가치를 경험하며, 팀원들이 성장과 보상을 함께 누릴 수 있어야 진짜 책임이 완수된다. 창업자의 의도는 비전과 사회적 의미에서 출발하지만 지속 가능성은 결국 수치로 증명되는 법이다.

시도한다는 건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한다. 창업자는 매번 새로운 임계질량을 만들어내며 '겁을 상실한 리스크'를 상대하곤 한다. 때로는 즐기며 때로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짐해야 한다. 주어진 작은 언덕, 작은 목표를 가벼운 마음으로 실천하다 보면, 몸이 부딪치며 배운 감각이 어느덧 정상에 도달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고.

창업자는 종종 방향을 잃고 헤매거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을 믿어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자. 상실의 슬픔도, 성과의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와 투자자, 고객이 있기에 버틸 수 있다. 외롭고 긴 싸움 속에서도 누군가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부족함을 감싸줄 것이다.

그들의 기대와 응원이 창업자의 지친 발걸음을 다시 내딛게 하는 힘이 된다. 좌절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그동안 받은 은혜를 언젠가 온전히 갚을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 믿음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창업은 결국 혼자가 아닌, 수많은 인연과 신뢰 속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다.

상실의 시간은 멈춰 서서 돌아보는 기회를 준다. 고은 시인의 시 '순간의 꽃'에는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는 시구가 있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누구의 신뢰 위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받은 것에 어떻게 보답하고 있는가를 되묻게 만든다.

지식은 공부하는 자에게, 부는 신중한 자에게, 권력은 용기 있는 자에게, 천국은 덕이 있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했던가. 창업자는 이 네 가지 모두를 향해 매일 부족함을 느끼며, 수많은 거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걸어가야 하는 사람이다.

언젠가 누구라도 이 자리를 떠나게 될 것이다. 그 전에 그동안 받은 은혜에 모두 보답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면, 우리 팀이 만든 서비스가 수많은 사람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고 인류에 가치를 전달하는 도구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이 창업자로서 남기고 싶은 마지막 발자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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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손보미 스타씨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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