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 칼럼]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 '미지의 서울' 주인공 유미지가 집 밖에 나서기 전 늘 내뱉는 주문 같은 대사다. 이 말만큼이나 AI(인공지능) 기술의 요즈음을 알려주는 적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어제의 AI는 이미 끝난 기술이 됐고, 내일은 한참 먼 미래가 될 만큼 당장 새로운 모델과 기업의 가치 평가가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말 모를 정도다.
드라마 주인공 미지는 자신의 쌍둥이 언니인 '미래'를 대신하는 삶을 산다. 언니의 굽 높은 구두에 발을 넣어 신고, 대신 언니의 회사로 향한다. 언니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보며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무척 다른 그의 일상과 관계들을 낱낱이 경험한다. 이 전개만큼이나 AI를 쓰는 서비스 기업들이 지금 당장 해야할 일들을 설명하는 내용이 또 있을까 싶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영어 표현(Put oneself in someone else's shoes)처럼, 사용자가 실제로 어떤 맥락에서 어떤 감정으로 어떤 목적을 갖고 그 기술을 사용하게 될지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사는 미지에게, 서울은 새로운 도시로 거듭난다. 과거에는 언니의 병원과 동일시될 뿐이던 미지의 공간 서울. 그 도시에서 그는 자신의 첫사랑과 함께, 꿈꾸던 '한강라면'을 앞에 두고 무지개 분수를 기다린다. 이 배경만큼이나 AI 기술이 널리 쓰일 시장을 탐색할 탁월한 방법이 또 있을까 싶다. 주어진 조건 아래서 뻔하고 막연하다고 생각했던 공간과 시장이, AI 기술에 깊은 애정을 품고 나서 보면 퍽 다르게 와 닿을 수 있다.
인정한다. 요즘 AI 기술 발전과 활용 사례 발굴에 몰입하는 바람에, 모든 로맨틱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죄다 AI 서비스 개발 프로세스와 연결되어 재생된다. 심지어 '월드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봐도 AI를 갖다 붙일 수 있을 정도다. AI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렌즈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을 갖고 주목하는 시장은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모든 미디어 영역이다. 신문과 방송 같은 레거시 미디어는 신뢰와 권위를 중심으로 팩트 제공의 가치를 지키고 있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플랫폼으로 삼는 미디어는 맞춤형 정보 공유의 가치를 지킨다.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은 알 만한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데서 가치를 올린다. 일대일·다대다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채팅 앱들은 더 빠르고 유연한 대화에서 고지를 점하고 있고, 레딧 같은 게시판과 포럼들은 관심 분야의 화젯거리를 모으는 장으로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미 습관이 굳어서 그다지 변할 것 없어 보이는 이 곳에 여진이 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을 연결하는 대화 경험을 바꾸는 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지난 겨울부터 AI 에이전트가 사용자의 말을 모두 정제한 문장만으로 토론하는 경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계엄 이후 곳곳에서 정치적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던 나는, 신념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끼리 일단 대화나 가능하게 할 방법으로 AI를 써 봤고, 그것이 연구의 시작이었다. 내 말을 곱게 번역해주는 중재자로서 AI의 효과는 꽤 괜찮았다. 실제 실험에서도 대화 참가자들은 상대에 대한 감정의 벽을 낮추고 끝까지 상대의 말을 들었다. 비슷한 연구를 도쿄대에서도 진행한 걸 발견했다. 이들과 다음주에 도쿄에서 직접 만날 예정인데, 인간들의 소통을 진심으로 돕는 AI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과 기업가들을 앞으로도 더 모아볼 예정이다.
지나간 날에 매달리지 말고 오늘 당장 내 결대로 밀고 나가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주인공 미지처럼, 우리는 미처 지나치고 있는 미지의 시장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정말 다른 사용 경험을 제시하며 기존 시장과 행동 방식을 엎어야 할 때다. 자신이 바꾸고 싶은 시장의 사용자들을 다시 끈질기게 탐구하는, 이 씬의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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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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