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재훈 에코프로파트너스 대표한국 배터리 산업은 위기에 처했다. 배터리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EV, PHEV, HEV)에 탑재된 배터리 총량은 약 894.4GWh로 전년 대비 27.2% 성장했다. 중국 CATL의 지난해 점유율은 37.9%로 LG에너지솔루션(291,000원 ▲2,500 +0.87%),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셀 3사의 합보다 두배 이상 격차를 벌리며 글로벌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2위인 BYD의 점유율도 17.2%로, 3사의 합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3사의 점유율은 전년보다 4.7% 하락한 18.4%로, 2020년과 비교하면 5년만에 점유율이 반토막 났다.
그동안 우리는 지난 2~3년간을 '배터리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꾸준히 성장했고 중국 기업들은 도약한 반면 우리 기업은 역성장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모 배터리 기업이 실적 악화의 방패막이로 '캐즘(chasm)'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후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캐즘을 '일반화'하며 캐즘은 국내 배터리 업계의 신화(myth)가 됐다. 하지만 배터리 시장의 캐즘은 한국에만 적용된 '선택적 캐즘'으로, 사실상 캐즘은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국내 기업의 점유율 추락의 주된 이유는 기술력 우위에 대한 과신에 따른 시장 오판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 부재다. 국내 기업의 주력인 고밀도·고출력의 삼원계 배터리가 중국 기업보다 기술력 우위에 있으며 시장의 스탠다드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을 중심으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한계점을 상당수준 극복했다. 배터리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도 최근 안전성과 가격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LFP 배터리의 적용 비중을 높이는 추세도 간과했다. 특히 완성차 업체들은 통상 '기승전 단가'가 핵심목표여서 시장의 중심추가 저가의 LFP로 이동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술력 우위만을 맹신하며 삼원계가 대세라고 오판했다.
이는 마치 1970년대 소니와 마쓰시타가 벌였던 VCR 표준 경쟁을 연상케 한다. 마쓰시타의 VHS 방식은 기술적으로 소니의 베타 방식보다 뒤떨어졌지만 VHS 방식을 지원하는 시장 생태계를 구축하고 VHS의 시장점유율을 높여 결국에는 승리했다. '기술보다 시장 생태계'라는 전형적인 교훈을 남긴 사례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최근 글로벌 국가들은 배터리 산업을 미래 에너지산업의 핵심으로 삼고 '국가대항전' 수준으로 사활을 걸고 지원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자국 산업보호와 규제완화 정책, 광산 확보에서부터 무제한적 연구개발(R&D) 지원 및 시장 생태계 구축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나마 고무적인 대목은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 상용화가 가속화된다는 점이다. 삼원계 배터리는 LFP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밀도 등에서 장점이 있어 프리미엄급 자율주행차나 휴머노이드 등에는 필수적이다. 이에 고성능·고밀도 배터리의 수요급증이 기대되는 데다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신재생 에너지 확대로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수요급증 등 다양한 산업 발전 과정에서 배터리 활용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큰 폭의 성장이 전망된다. 더구나 미국이 관세·비관세 장벽을 활용해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어 국내 업체들의 반사이익도 기대된다.
어찌보면 지금이 K-배터리가 침체를 벗어나 재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 제품이라도 시장이 원치 않고 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LFP 배터리 시장에 대한 오판을 교훈 삼아야 한다. 겸손하게 항상 시장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초격차 기술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연구개발에 매진해야 한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도 "K-배터리 산업은 대한민국 경제 대도약의 핵심이어서 K-배터리를 육성할 것"이라고 공약한 만큼, 적극적인 연구개발 지원 뿐만 아니라 투자세액공제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직접환급제' 도입과 IMF 시기 반도체산업의 구조조정과 같은 정부 주도 구조조정을 위해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에 대한 규제완화 등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