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칼럼] 이현송 스마트스터디벤처스 대표
스타트업들이 열고 있는 새로운 시장의 불확실함, 투자한 스타트업이 잘 되어도 못되어도 사실상 나의 기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감, 그 와중에 펀드 출자자들에게 약속한 투자수익률 이상을 달성해야 하는 부담감 속에서 VC(벤처캐피탈)로서의 중립을 지키려 애쓰지만, 훌륭한 창업자를 만나는 순간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비견될만 하다. 매일 복수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만나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의 비전을 듣는 나날이 늘어가다 보면, 더더욱 이러한 순간이 쉽게 오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쉽게 오지 않듯이.
작년 한 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기업 65개사(재상장, SPAC 상장 제외)의 창업 후 IPO(기업공개) 소요 기간은 15.2년에 달한다. 투자한 비상장 기업의 지분을 되팔아 차익을 얻는 것이 일반적인 VC의 수익모델인데, 차익실현 극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시점인 상장까지 가는데 무려 15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통상 7~8년의 존속기간을 가지는 VC펀드가 최소 2개 이상 바통 터치를 하며 버텨줘야 하는 시간이다. 그 동안 스타트업은 생판 모르는 기술과 서비스를 고객에게 알리고, 고객을 공고하게 붙잡기 위해 수시로 기술과 서비스를 피봇팅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인력을 채용하고, 그 인력의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해 투자금을 유치하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차고 넘친다.
스타트업이 반드시 겪는 그 좌충우돌의 시간을 투자 이후에 함께 하는 것이 VC의 주된 역할이다. 투자한 포트폴리오가 점유하는 시간 관점에서만 본다면, VC는 투자하는 직업이라기 보다는 거절하는 직업이며, 결정하는 직업이라기 보다는 기다리는 직업에 더 가깝다. 투자하고 싶은 기업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투자 후에도 다이나믹한 인고의 시간을 겪어내는 스타트업을 지켜보며 (창업자 몰래) 속을 끓여야 하는 것이다. 홀딱 반한 창업자 대표님을 몇 개월 내내 괴롭혀가며 투자심의위원회를 통과시키고 투자계약을 날인하기 직전, '폐업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하러 왔다는 대표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세상 어떤 연인으로부터의 이별 통보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엔터테인먼트 업계 대장주로 군림하고 있는 기업에 투자해 전설적인 투자수익률을 기록한 선배 심사역도 해당기업에 투자한 2011년부터 5년간 내낸 0원으로 평가된 펀드 감사보고서를 보고 한숨과 위액을 삼켰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분기 보고 때 펀드 출자자들이 VC에 제기하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결국 투자를 검토하며 반했던 창업자의 훌륭한 면면이다. 소소한 통화를 할 때 조차도 이런 사람이 사업을 잘 하지 않으면 누가 잘할 수 있겠어'라는 확신을 심어주시던 대표님의 폐업 소식이 결국 나와 같은 생각을 하던 기자에 의해 대서특필 되자, 다음날 정부 부처 담당자가 사무실에 달려와 규제 수정을 약속하고 갔다. 덕분에 나는 재개된 사업에 투자를 집행할 수 있었고, 몇 년 후 회사는 대기업을 제치고 시장 내 1위로 올라섰다는 헤피엔딩의 러브 스토리가 완성됐다.
시장에 대한 날카로운 직관이든, 고객보다 더 고객의 니즈를 이해하는 서비스의 진정성이든, 하다못해 짧지 않은 IR 시즌 동안 VC를 구워삶아 투자금을 끌어냈던 끈질김이든… 여태껏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걸으며 부딪히고 찌그러질테지만, 절대 바래지 않을 창업자의 그 '심쿵' 포인트에 직원도, 협력업체도, 고객도, 그렇게 온 우주도 반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내가 그랬듯이.
'UFO칼럼' 기업 주요 기사
- 기자 사진 이현송 대표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