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수호하자 레몬마켓 ?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기사 입력 2022.08.1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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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으로 신구 산업의 갈등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이번엔 변호사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3일 이사회를 열어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오는 8월부터 리걸테크 플랫폼에 변호사가 참여하거나 광고를 해선 안 된다는 게 골자다. 금품·향응 등을 받고 변호사를 소개·알선·유인하면 안 된다는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리걸테크는 IT(정보기술) 기반으로 법률상담, 소송결과 예측 등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대한변협은 규정을 어긴 변호사들을 징계하는 방안도 도입할 방침이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변호사 윤리장전' 개정이 예고된 상태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대한변협은 변호사를 대상으로 영구제명, 제명, 정직, 과태료, 견책 등의 징계를 내릴 수 있다. 정직 이상 처분을 받으면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없다. 사실상 리걸테크 플랫폼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의도다.

대한변협의 이번 조치로 국내 최대 리걸테크 플랫폼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 등 관련 벤처·스타트업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벌써부터 '제2의 타다' 사태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로앤컴퍼니는 로톡 회원 변호사들과 함께 대한변협을 상대로 헌법소원과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다.

대한변협은 '직역수호'와 '시장질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당장 벤처·스타트업업계에선 "기득권의 몽니 부리기"라고 강하게 비난한다. 대한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이미 2차례 변호사법 위반혐의로 로톡을 고발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로톡의 영업방식이 단순 홍보대행이라고 봤다. 이후 대한변협도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가 올해 초 지도부가 바뀌자 다시 규제에 나섰다.

게다가 애초 대한변협은 모든 인터넷 공간에서 광고를 금지했다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일자 유튜브와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를 통한 광고는 허용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같은 인터넷 광고임에도 리걸테크 플랫폼만 옥죄는 것은 다분히 자의적인 조치라고밖에 볼 수 없다. 변호사업계 내부에서조차 대한변협의 이번 조치에 대해 "밥그릇 지키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는 자조 섞인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법률시장은 대표적 레몬마켓(정보 비대칭으로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이 어려운 시장)이다. 승소율 등 변호사 역량을 평가할 객관적 정보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학연, 지연, 혈연 등 연고주의가 만연한다. 불법 법조 브로커, 전관예우 등의 크고 작은 법조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시장 특성과 무관치 않다.

리걸테크 스타트업은 이 부분을 파고든다. 일반 소비자의 정보접근성을 높이면서 레몬마켓을 피치마켓(정보 비대칭이 사라져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이 가능한 시장)으로 바꾸는 것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이 리걸테크 플랫폼을 인정하고 규제개선을 통해 관련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 나선 것도 소비자 편익 증대라는 순기능이 크기 때문이다.

관련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 등에 따르면 리걸테크 분야의 전세계 투자규모는 2016년 2억달러(약 2200억원)에서 2019년 11억달러(약 1조2100억원) 수준으로 연평균 81% 증가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리걸테크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이 20곳 이상 배출됐지만 국내 기업은 아직 한 곳도 없다.

리걸테크 플랫폼 활성화로 소비자 접근성이 높아지면 법률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 유능한 청년변호사들의 시장진입도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대한변협은 신산업을 막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오히려 판결문 공개 확대 등 규제개선을 통해 리걸테크 플랫폼의 이 같은 순기능을 키우는 데 앞장서야 한다. 대한변협이 우려하는 불법 중개·알선 등의 부작용은 업계가 공동으로 감독기구를 만들거나 소비자 신고제 등 사회적 감시를 강화해 관리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직역수호라는 구호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퇴행적 변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소비자를 위한 법률시장을 만들어야 변호사라는 직역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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