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성장 열쇠는 '인내자본'…기술금융체계 재설계 필요"

사회·정리=류준영 기자 기사 입력 2026.02.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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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니콘팩토리-기술경영경제학회
'딥테크 혁신성장 위한 기술금융체계' 전문가 좌담회

[편집자주] 이재명정부는 초격차 첨단기술(딥테크)을 기반으로 한 '기술 주도 성장'을 핵심 경제성장 전략으로 내세웠다. 양자, 바이오, 우주, AI(인공지능) 등 딥테크산업에 집중투자하는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계획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딥테크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보다 정교한 정책 및 기술금융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반 창업과 달리 딥테크는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긴 호흡이 필요해서다. 머니투데이 유니콘팩토리와 기술경영경제학회가 이같은 문제의식 아래 '딥테크 혁신성장을 위한 기술금융체계'를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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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규태 서강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연구처장), 이병헌 광운대학교 교수(지방시대위원회 위원),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문위원(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사진=김창현 기자
(왼쪽부터)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규태 서강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연구처장), 이병헌 광운대학교 교수(지방시대위원회 위원),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문위원(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사진=김창현 기자

"딥테크 스타트업이 성장해 글로벌 시장에 안착하려면 단순히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자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긴 호흡으로 기업의 성장을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자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전문위원(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소월로 단암타워 2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문가 좌담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손 회장을 비롯해 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규태 서강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연구처장), 이병헌 광운대학교 교수(지방시대위원회 5극3특 특위 위원장),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이 참석해 딥테크 기업이 창업 이후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정책금융 혁신 및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국내 딥테크 창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손병호=딥테크 창업이 늘기 위해서는 일반 스타트업보다 훨씬 긴 개발 기간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창업 초기 이후 기업이 시장 진입과 해외 확장을 준비하는 중간 단계에서 '자금 공백'이 발생한다. 특히 기술 검증 뒤 시리즈B~프리IPO 구간에서 자금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스케일업 투자는 전체 벤처투자의 10%대에 그친다.

▲안준모=R&D 단계에서는 자금이 비교적 잘 공급되지만 TRL(기술성숙도) 7처럼 사업화가 본격화되는 순간부터 투자가 급격히 줄어든다. 이 단절을 메우지 못하면 딥테크 기술 사업화와 창업은 구조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전문위원(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사진=김창현 기자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전문위원(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사진=김창현 기자


-지역 딥테크 창업생태계는 더 어려울 것 같다.

▲노민선=모태펀드의 역할은 '벤처기업의 피를 돌게 하는 혈액순환'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금의 흐름이 수도권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 문제다. 현재 비수도권 벤처투자 비중은 25% 수준에 불과하고 지역 내 편차도 크다. 지역의 혁신금융이 제대로 돌지 않는 상황에서는 기술창업 생태계가 균형 있게 성장하기 어렵다.

▲이규태=부산에 있던 요즈마펀드가 철수한 이유는 "투자할 만한 기업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역에서 딥테크로 불리는 기업들이 해외 투자자 눈높이에서는 '진짜 딥테크'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름은 딥테크지만 기술적 차별성이나 장기적으로 베팅할 만한 시장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딥테크 투자 증가가 반드시 긍정적 신호만은 아니다. 최근 국내 딥테크 투자 3.6조원 중 상당 부분이 바이오와 AI에 집중돼 있고, AI 분야에선 '에이전트 AI'처럼 서비스형 모델이 늘어나면서 기술의 깊이가 약해지는 점이 우려된다. 해외에서 말하는 '퓨어 딥테크', 즉 근본적 기술 난제를 해결하는 혁신과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이런 단기 사업화 중심 투자가 오히려 생태계의 다양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사진=김창현 기자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사진=김창현 기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손병호=딥테크 기업이 성장하려면 단기간에 수익을 회수하기 어려운 만큼 오랜 시간을 두고 기다려주는 '인내자본'이 필요하다. 기술 개발부터 시장 안착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패 위험도 크기 때문에 기존 정책펀드처럼 짧은 회수 구조로는 스케일업을 충분히 지원하기 어렵다. 딥테크 분야에는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 투자 설계가 요구된다. 주요국들은 정부가 먼저 위험을 일부 부담해 민간자본이 뒤따라 들어올 수 있도록 후순위 출자 등 다양한 장치를 활용하고 있다. 영국의 브리티시 페이션트 캐피탈 '퓨처펀드: 브레이크스루'처럼 정부가 선투자하고 민간이 후속 참여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노민선=정부는 모태펀드를 마중물로 지방정부·대학·금융기관이 함께 출자하는 '지역성장펀드'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역은 출자에 참여할 기관이나 재원이 부족해 펀드 조성 자체가 어려운 현실이다. 지자체 재정 여건에 따라 지역 간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자 기반이 약한 지역까지 고려한 인센티브 설계가 필요하다. 모태펀드 출자비율을 높이거나, 풋옵션 제공, 우선손실충당 확대 같은 장치를 도입해야 지역에서도 민간 자금이 유입될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
이규태 서강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연구처장)/사진=김창현 기자
이규태 서강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연구처장)/사진=김창현 기자

-지역에서 본질적으로 딥테크 산업을 성장시키려면 어떤 생태계 설계와 투자 구조가 필요한가.

▲이규태=대안적 사례로 네덜란드의 양자기술 혁신 프로그램 '퀀텀델타 NL'(Quantum Delta NL, QDNL)을 들 수 있다. QDNL은 국가성장기금에서 6억 유로 이상을 지원받아 양자컴퓨팅·네트워크·센싱을 중심으로 R&D부터 산업화, 창업까지 전주기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네덜란드의 강점은 생태계 설계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칩, 검사장비, 케이블 등 밸류체인을 분업하며 중복을 줄이고, 분야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든다. 이런 관점은 지역 정책에도 적용돼야 한다.

지역이 서울과 같은 산업을 따라가면 결국 인재와 자본은 서울로 쏠릴 수밖에 없다. 지역은 고유한 산업과 데이터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산의 수산 데이터, 전남·전북의 농업 데이터처럼 지역만의 강점을 기반으로 역할을 나누고 장기 투자를 통해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사람이 지역에 남고 지속 가능한 성장도 가능해진다.

▲이병헌=최근 민간 자금이 스타트업 투자로 유입되는 여건이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이제는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다시 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그동안 정부와 민간이 함께 시장을 키워왔다면, 앞으로는 각자의 강점에 맞춰 보다 분업적인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방향은 분명하다. 정부는 창업 직전·직후와 시장 진입 초기, 그리고 투자 회수 기간이 긴 딥테크 분야에 집중하고, 스케일업 이후 단계는 연기금 등 민간 자본이 주도적으로 맡는 역할 분담이 요구된다. 아울러 지역별 투자공사 설립, 기술보증기금의 지분투자 기능 강화 등 공공과 민간 투자기관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제도적 기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이병헌 광운대학교 교수(지방시대위원회 5극3특 특위 위원장)/사진=김창현 기자
이병헌 광운대학교 교수(지방시대위원회 5극3특 특위 위원장)/사진=김창현 기자
-요즘 딥테크 기업 성장을 뒷받침할 새로운 금융기법 논의의 한창이다.

▲손병호=최근 국민성장펀드에서 초장기 기술투자 펀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책금융을 수익률(IRR)만으로 평가하는 관행에는 한계가 있다. 정책펀드는 산업 육성이라는 공공적 목적을 가진 만큼 고용 창출, 기술 경쟁력, 산업 파급효과 등 다양한 성과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 대형 펀드가 출범하면 기존 모태펀드나 부처별 정책펀드와 중복될 수 있어, 펀드 간 정보 공유와 조정 체계 마련도 중요하다. 앞으로 딥테크 전용 장기 정책펀드 확대와 후순위 출자, 성과조건부 회수 등 다양한 금융기법을 통해 장기투자 기반이 강화되길 기대한다

▲노민선=퇴직연금이나 법정기금 같은 연기금의 벤처투자 참여가 국정과제로 논의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만 연기금은 국민의 안전망 성격이 강한 만큼 신중한 접근도 필요하다. 참여를 확대하려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투자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보다 적극적인 출자를 유도해야 한다.
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사진=김창현 기자
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사진=김창현 기자

-딥테크 투자를 확대하려면 자금 조달 방식과 기술가치 평가 체계에서도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안준모=혁신금융 기법엔 브레이디드 펀딩(Braided funding)과 블렌디드 펀딩(Blended funding) 등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브레이디드 펀딩은 공공·민간·비영리 자금이 각자의 규칙을 유지한 채 느슨하게 연결하는 방식이고, 블렌디드 펀딩은 서로 다른 재원을 하나의 펀드로 묶어 민간 자본을 더 크게 끌어들이는 데 유리한 구조다. 해외에서는 부처별로 따로 지원하는 방식보다 자금을 통합 운용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은 부처 간 제도와 펀드 구조가 달라 쉽지 않지만, 하나의 성공적인 시범 사례가 나오면 확산 가능성이 있다.

혁신금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술가치를 평가하는 체계도 뒷받침돼야 한다. 최근 AI 발전으로 기보 등이 과거 데이터와 재무·세무 정보를 결합한 평가모델을 구축하고 전문가 평가를 보완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다만 특허 중심 평가나 담보·연대보증 같은 관행은 여전히 남아 있어, 보다 과감한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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