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큰손', ESG·역외펀드에 빠진 이유…"글로벌화 발판"

김성휘 기자, 고석용 기자 기사 입력 2023.11.0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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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웅환 한국벤처투자(KVIC) 대표

유웅환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집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사진=한국벤처투자
유웅환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집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사진=한국벤처투자

"ESG는 퍼스트 무버(선도자)의 DNA예요. 이걸 스타트업부터 체화하면 존경받는 대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바람이 전세계는 물론 국내도 휩쓸고 있지만 관련 투자를 선뜻 늘리기란 쉽지 않다. 금액으로 계산되지 않는 이른바 비재무적 가치가 있고, 이익 극대화를 위한 경영과 조화를 이루는 게 숙제다. 투자 혹한기에 이런 비전통적 성과지표가 주목받긴 더욱 어렵다. 이런 가운데 국내 스타트업 투자의 '큰손'이 ESG를 잘 지키는 기업과 운용사에 투자하겠다며 팔을 걷어부쳤다.

유웅환 한국벤처투자(KVIC) 대표는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사옥에서 머니투데이 유니콘팩토리와 만나 "ESG는 이미 글로벌 패러다임이고 관련 규제는 확산 추세"라며 "ESG 경영체계를 내재화하고 벤처투자 생태계로 확산하겠다"고 말했다. 2022년 9월 취임한 그는 임기 2년차 들어서는 이번이 첫 언론 인터뷰다.


"ESG, DNA처럼 내재화" 앞장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KVIC은 국내 스타트업 투자의 마중물인 모태펀드를 관리·감독한다. 유 대표는 모태펀드 출자 운용사 선정시 ESG 요소를 평가에 반영하고 ESG에 위배되는 산업엔 투자를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KVIC 2030 비전의 핵심이다.

지난달 30일 ESG 이니셔티브 행사를 열고 사회적 성과 측정을 통한 비재무적 가치 확립, ESG 평가모델 도입 등을 제시했다. DIM(Double I Multiple)이라는 개념도 도입한다. 전통적 지표인 투자수익배수(Investment Multiple)에 사회성과배수(Impact Multiple) 개념을 더했다.

그는 초기 스타트업 시절부터 ESG를 '내재화'할 것을 강조했다. 인텔의 반도체 설계 핵심인력으로 일했던 그는 선진 기업들이 ESG가 부각되기 전부터 투명한 경영, 지역사회 공헌과 다양성 강조 등을 해왔다고 말했다. 국내 첨단기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관점에서도 ESG는 '무기'가 된다는 설명이다.

유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인텔에서 ESG란 말을 듣진 못했지만 ESG를 위배한 경영을 거의 못 봤다"며 "내재화가 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 등 개발도상국들이 기능적 완성도는 빨리 따라오지만 신뢰성을 높이는 건 시간이 더 걸린다"며 "(ESG는) 개도국과 격차를 벌리기 위한 수단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스로 ESG를 실천하는 기관장이다. 취임과 함께 서초동 사옥 1층 사내카페에 다회용 컵을 도입했다. 이날 만난 직원들은 노란색 다회용 컵에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유 대표는 자신을 CEO(최고경영자)가 아닌 CHO로 명명해 화제가 됐다. 직원의 건강(health)을 챙긴다는 뜻이다. 최근 '만보 펀드'를 사내에 도입했다. 모태펀드 관리기관답게 직원 건강 프로그램도 '펀드'로 명명했다. 참가비를 모아 걷기 목표를 달성한 참가자들에게 배분한다.
(서울=뉴스1) = 유웅환 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가 1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23 런던테크위크(London Tech Week)’에 참석해 있다.   한국벤처투자는 올해 한국벤처투자 유럽사무소 개소를 앞두고 있다. (한국벤처투자 제공) 2023.6.1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뉴스1) = 유웅환 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가 1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23 런던테크위크(London Tech Week)’에 참석해 있다. 한국벤처투자는 올해 한국벤처투자 유럽사무소 개소를 앞두고 있다. (한국벤처투자 제공) 2023.6.1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韓 벤처생태계 글로벌화 소명


유 대표는 한국벤처투자의 글로벌화에 열심이다. 해외자본을 국내 기업에 유입하는 '해외 VC(벤처캐피탈) 글로벌펀드' 이른바 역외펀드에 힘을 싣고 있다. 유 대표는 "모태펀드는 현재까지 59개 역외펀드 출자를 통해 8월까지 한국 기업에 1조1000억원이 투자되는 결과를 얻었다"며 "모태펀드 출자 약정액 6287억원 대비 1.7배이고 납입액 4602억원 대비로는 2.4배 투자가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이달말 런던에 유럽 사무소를 공식 개소한다. 미국, 중국 상하이, 싱가포르에 이어 KVIC의 네번째 해외 거점이다. 유럽은 물론 '오일머니'의 땅인 중동 투자업계까지 담당한다.

그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은 유니콘이나 VC가 유럽에서 여전히 가장 많고, 벤처투자시장으로 보면 독일의 2배"라며 "알파고의 딥마인드, 반도체 회사 Arm 등 영국기업들이 여러가지 창조적 파괴를 많이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연내 조직개편도 구상 중이다. 마침 부대표직이 신설됐다. 그는 "회사가 성과를 내려면 개인도 최대 결과물을 내야 한다"며 "본부 신설이나 통합도 가능하다"고 열어뒀다.

한편 영화계 출신인 신상한 KVIC 부대표의 이력은 올해 국감 이슈이기도 했다. 유 대표는 "적합한 인사"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KVIC 관계자는 "IT 전문가인 유 대표와 문화콘텐츠 전문성을 갖춘 신 부대표가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유 대표는 자타가 인정하는 반도체 전문가. 인텔에서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로 10년간 일하며 DDR(고속 D램) 세계표준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귀국 후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 현대차 (249,500원 ▼500 -0.20%) 등에서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SK텔레콤 (51,300원 ▲300 +0.59%)에서는 ESG 활동을 총괄했다.

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합류했고 그해 9월부터 KVIC을 이끌고 있다. 최근 저서 '반도체 열전'을 썼다. 작고한 그의 부친은 삼성전자의 초기 주주. 2대에 걸친 반도체 열정을 부친의 3주기에 맞춰 담아냈다.


유웅환 대표 주요 문답


-올해 모태펀드 정시 출자사업이 늦어진 점이 국정감사때 지적됐는데.
▶늦어진 건 맞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10개 중) 3개는 결성됐고, 4개가 지금 구성 중이고, 나머지 3개는 연말연초엔 다 결성될 것같다. 내년에 할 일은 출자 사업을 좀 앞당기는 것이다. 또 결성을 100% 다 하지 않고 예를 들어 70%만 결성해도 투자하게 해주거나 하는 등 결성규약 완화같은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신성한 부대표가 국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임명과정과 이후 업무에 문제는 없나.
▶한국벤처투자 정관에 따라 대표가 적합한 인사를 추천했고 이를 중기부가 승인해 선임됐다. 신임 부대표의 블랙리스트 관련 의혹 보도가 과거 있었던 것으로 알지만 사법기관 등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안으로 보고 받았다.

-인텔에서 겪은 ESG 경영은.
▶그땐 ESG라는 말도 없었지만 인텔은 투명한 경영을 했고, 다양성 보장을 위한 여러 장치를 뒀다. 인텔 본사가 있는 도시 폴섬도 원래 형무소 배후도시였는데 인텔이 그곳 신도시에 들어가 학교 등 인프라를 최고로 만들었다. 지역사회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다 ESG 구성요소다. ESG를 내재화한 셈이다.

-인텔은 거대기업이다. 갓 시작한 스타트업에 ESG를 실천하라는 건 무리 아닌가.
▶보통 벤처 스타트업은 BEP(손익분기점)를 언제, 얼마 달성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전 지구적 난제가 있고 우리가 이걸 해결하겠다는 인재들도 있다. 이런 벤처스타트업을 많이 만들어야한다. AI(인공지능) 시대에 DX(디지털 전환)도 ESG와 연결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경기를 ESG 관점에서 보자. 알파고를 위해 서버를 가동할 때 배출하는 탄소량은 이세돌이라는 한 사람이 배출하는 탄소량보다 수 만 배 될 것이다. 디지털 전환으로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지만 환경적인 문제가 도사린다. 이걸 어떻게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하느냐가 디지털 전환의 중요한 꼭지이고 그게 다 비즈니스 기회다.

-한국 벤처 생태계의 글로벌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지난번 미국 보스턴에서 제가 IR(기업설명)을 하고나니 GP(운용사)들이 만나고 싶다고 5팀 정도 줄을 섰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출자사업만 관심있는 게 아니다. 장기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싶다더라. 해외 톱티어 투자사들은 GP와 LP(출자자)가 한몸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출자를 해주고, 우리가 출자를 받을 수도 있다.

-글로벌화를 강조하지만, 국내로 눈을 돌리면 스타트업 생태계의 수도권 쏠림이 늘 지적된다.
▶지역 투자에 굉장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투자 규모가 전체 투자액의 15% 정도밖에 안 되던 것이 올해 27%까지 올라왔다. 본부장급을 지역 소장으로 파견했다. 앞으로 민간 모펀드를 만들고, 지역 혁신펀드같은 것도 정착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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