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치맥 회동' 그 후, 피지컬 AI와 뉴로모픽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기사 입력 2025.12.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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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칼럼]

이번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의 최대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의 이른바 '치맥 회동'이 거론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총수들의 비공식 일정이지만 워낙에 상징성이 큰 탓에 주요 정상회담보다 더 많은 화제가 됐다.

이들의 만남은 엔비디아를 주축으로 한 글로벌 AI(인공지능) 생태계에서 한국이 새로운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이기도 했다. 특히 "최신 GPU 26만 장을 공급하겠다"는 젠슨 황의 약속은 'AI 3대 강국'이라는 정부의 구상을 현실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GPU 26만 장을 확보하게 되면 한국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GPU 보유국이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AI 3대 강국 도약이라는 목표 실현을 위해 AI 주권, 즉 독립적인 '소버린 AI(Sovereign AI)'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를 위해 GPU 수급부터 데이터센터 및 전력망 등의 인프라 구축, AI 연구개발을 촉진할 인재 육성, 관련법 및 제도 확충까지 종합 대책을 마련 중이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정책이 'AI 고속도로' 건설이다. AI 고속도로는 단순히 인프라 구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속도로가 사람과 물류의 흐름을 통해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궁극의 결과로 이어지려면 그에 못지않게 많은 지선과 간선도로가 필요하다. 소버린 AI도 마찬가지다. 26만장의 GPU를 토대로 거대 AI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대동맥이라면, 이를 산업과 생활 현장에서 활용하는 것은 모세혈관에 해당한다.

따라서 GPU 확보와 AI 고속도로 건설의 다음 단계는 '피지컬 AI', 즉 실제 세계에서 스스로 인지·판단·행동하는 실시간 AI 구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공장의 로봇, 항만의 물류 자동화 시설, 도로의 자율주행차, 시민들의 스마트폰과 웨어러블(착용형) 기기 같이 실제로 사람과 사물이 연결되는 설비와 장치 속에 AI를 내재화하는 것이다. 젠슨 황 역시 CES 2025에서 "AI의 다음 프론티어는 피지컬 AI"라 예측한 바 있다.

현실에서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피지컬 AI는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판단해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정보와 산업기밀 등의 민감 데이터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고 장치 내부에서 처리할 수도 있어야 한다. 또 장시간 안정적으로 작동하며 필요한 순간 즉시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적고 응답 속도가 빨라야 한다.

이러한 저전력·저지연 요구를 충족시키는 핵심기술은 '온디바이스 AI'이다. 스마트폰·PC·자동차·웨어러블 등의 기기 자체에서 작동하는 AI이다. 인터넷 연결과 서버를 거치지 않고 기기 내부에서 바로 동작하기 때문에 온디바이스 AI의 활용 범위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고속도로-피지컬-온디바이스'로 연결되는 일련의 AI 연결망 구축을 위해서는 거대 AI와 더불어 현장에 특화된 AI 모델의 연구개발이 동등한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원활한 AI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먼저 AI가 실제로 적용될 산업과 작업을 정하고 그에 맞게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수집·정제해야 한다. 동시에 각 장치가 가진 전력, 메모리, 속도 등의 제약을 고려해 가볍고 효율적인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설계하는 '동시설계'가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용 AI의 설계는 차량 성능 제어와 안전 규제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스마트폰용 AI라면 배터리 소모가 적으면서도 필수 기능이 유지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뉴로모픽 등의 차세대 컴퓨팅 기술이 더욱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로모픽 컴퓨팅은 뇌의 신경세포처럼 아무 일도 없을 때는 전력을 거의 쓰지 않고 필요할 때만 동작한다. 상시 대기 상태를 유지하다 특정 신호에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피지컬 AI와 잘 맞는 특성이다. 기존의 AI 가속기와 뉴로모픽, 메모리 근접 연산 기술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면 동일한 양의 전력으로 더 많은 현장과 다양한 작업 상황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다.

빈약한 자원에 더해 인구마저 빠르게 줄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AI는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유일한 희망일 수밖에 없다. GPU 26만장의 확보는 그 새로운 변화를 향한 든든한 성장 엔진이다. 비록 AI 고속도로 구축의 시발점은 외국의 기술이지만, 가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피지컬 AI 네트워크는 우리의 독자적인 기술로 설계하고 완성해야 한다.

20세기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을 이끈 경부고속도로가 올해로 55번째 생일을 맞았다. GPU 26만장 확보와 함께 본격화되고 있는 AI 고속도로 건설이 경부고속도로를 뛰어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또 다른 대역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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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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