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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원 어피닛 대표최근 인도 뉴델리에서 'AI 임팩트 서밋 2026'이 열렸다. 영국 블레츨리 파크, 서울, 파리에 이은 네 번째 글로벌 AI 정상회의인데, 개발도상국가가 개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행사는 단순한 외교적 이벤트가 아니다. 100개국 이상에서 3만5000명이 참가 등록을 했다고 한다. 인도가 이 자리를 꿰차고 나설 수 있었던 것은 AI가 경제 판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나라여서다.
지난해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7.4%였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이다. 필자는 이 숫자 뒤에 AI가 있다고 확신하는 쪽이다. 물론 인도의 성장을 인구 배당, 제조업 이전, 정부 인프라 투자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 현장에서 12년을 보낸 사람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인다.
은행 지점 하나 없는 시골 마을에서, 스마트폰 하나로 AI가 1분 만에 신용을 평가하고, 몇 분 뒤 자금이 모바일 지갑에 들어온다. 이 과정이 하루에 수백만 건씩 일어난다. 1960년대 한국이 금융 대중화에 수십 년 걸었던 일을 인도는 AI 덕분에 몇 년 만에 해치우고 있다. 개인의 신용이 열리면 경제 활동이 시작되고, 그것이 수억 건 누적되면 GDP가 움직인다. 단순한 추론이 아니라, 매일 데이터로 확인하는 현실이다.
요즘 AI 하면 사람들은 거대한 것을 떠올린다. 피지컬 AI, 휴머노이드 로봇, 1000억 파라미터 초거대 언어모델. 물론 이런 기술들이 미래를 바꿀 것이다. 하지만 AI의 진짜 혁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조용하고 깊게 일어나고 있다. 바로 버티컬 AI(Vertical AI)다. 금융, 의료, 농업, 물류 등 각 산업의 고유한 문맥을 깊이 이해하고 그 안에서 사람 대신 판단하고 실행하는 AI. 화려한 로봇이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동안, 버티컬 AI는 뒤에서 산업의 근육을 재편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회계학회의 학술지 'The Accounting Review'에 2025년 발표된 연구 결과가 그 사실을 대변한다. 케냐의 디지털 대출 플랫폼 Tala의 데이터를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추적한 것인데, AI 기반 신용평가를 통해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변화가 놀라웠다. 월 소득 20.8% 증가, 고용 확률 23.5% 상승, 이동 반경 9.4% 확대, 사회적 네트워크 26.8% 성장.
한 사람이 AI를 통해 신용이라는 기회를 얻었을 때, 단순히 돈을 빌린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더 멀리 이동하고, 더 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더 많이 벌게 됐다. 이것이 버티컬 AI의 힘이다. 범용 AI가 모든 것을 얕게 아는 기술이라면, 금융 버티컬 AI는 '이 사람의 금융 상태'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 목숨을 거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 정밀한 판단 하나가, 수천만 명의 경제 활동을 열고 있다.
그래서 이번 뉴델리 AI 임팩트 서밋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그는 개막 연설에서 "인공지능은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여는 기술이지만, 사람을 데이터 포인트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AI를 민주화해야 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을 위한 포용과 임파워먼트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AI는 소수의 기술 기업이 독점하는 무기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에 깊이 공감한다. 케냐의 디지털 대출 사례가 말해주듯 잘 설계된 버티컬 AI는 한 사람의 삶, 한 지역의 경제, 나아가 한 나라의 성장 경로까지 바꿀 수 있다. 앞으로 AI 논의의 중심은 "무슨 모델을 만들었느냐"에서 "누구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느냐"로 옮겨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 변화의 최전선에 인도와 같은 신흥국, 그리고 그 안에서 실험하는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설 자리도 함께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