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엔젤투자리스트 최고위 과정 모집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광학지문'…위조 틀어막을 K-보안 신기술

광주(전라)=류준영 기자 기사 입력 2025.09.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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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테크마켓]정현호 광주과학기술원(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부교수

[편집자주]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를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이 보유한 딥테크를 한자리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는 사업화 유망기술 공동 설명회가 코엑스에서 열린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는 오는 1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A홀에서 개막하는 '스마트 에너지 플러스'(SMART ENERGY PLUS·SEP) 2025'의 특별 부대행사로 '2025 테크마켓'을 개최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카이스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4대 과기원이 공동 개최하는 이 행사는 우수 R&D(연구개발) 성과를 국내 대·중견·중소기업에 소개·이전해 기존 제품 및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무대에 오를 신기술을 개발한 과기원 교수들에게 직접 핵심 기술력과 산업적 가치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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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광주과학기술원(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정현호 부교수, 김규린 연구원 /사진=류준영 기자
(왼쪽부터)광주과학기술원(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정현호 부교수, 김규린 연구원 /사진=류준영 기자

반짝이는 금빛 시편 몇 장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언뜻 보면 단순한 금속 박막처럼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화면 가득 펼쳐진 붉은 점무늬와 불규칙하게 섞인 밝고 어두운 픽셀이 나타난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정현호 부교수는 "겉으론 같은 색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모두 다르다"며 "복제할 수 없는 차세대 보안 인증 기술이 이 안에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정 부교수 연구팀은 오는 10월 1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2회 테크마켓'에서 물리적 복제 불가 함수(PUF, Physically Unclonable Function)를 기반으로 한 보안 인증 기술을 소개한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불법 거래 의약품, 가짜 주류, 위조 명품 시계·가방 등 각종 위조 상품의 유통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QR·바코드 한계 넘어선 PUF 기술


현재 위·변조 방지 수단으로 널리 쓰이는 QR코드와 바코드는 복제가 쉽고 제품마다 완전히 고유한 정보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정 부교수팀의 기술은 '같은 제품이라도 개체마다 모두 다른 코드를 심어 넣는 것'이 핵심이다.

연구팀은 이 같은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PUF를 활용했다. PUF는 반도체나 회로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공정 차이를 이용해 각 부품마다 복제 불가능한 고유 패턴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말한다. 이 패턴을 읽어 인증·암호화에 활용하면 복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하드웨어 지문'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 PUF 기술은 색상 조절이 어렵고 외부에서도 쉽게 식별돼 보안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자료=GIST
자료=GIST
연구팀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에서 발견되는 '구조색 현상'에 주목했다. 나비의 날개, 새 깃털, 해조류 잎 등은 나노 크기의 미세 구조가 완벽한 질서도, 무질서도 아닌 '준질서' 형태로 배열돼 있어 겉보기에는 일정한 색을 띠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곳곳의 색상이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 일종의 '미세한 무작위성'을 가진다. 이는 자연에서 위장, 포식자 회피 등 생존에 유리한 기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원리를 모사한 연구팀은 금속 박막 위에 절연체(유전체) 층을 증착하고, 그 위에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금 나노입자를 정전기적 자가조립 방식으로 배열해 '플라즈모닉 메타표면'을 제작했다. 육안으로는 일정한 반사색을 띠지만 고배율 광학현미경으로 보면 영역마다 서로 다른 산란 패턴, 즉 '광학 지문'이 드러난다.

정 부교수는 "겉으로는 동일해 보이지만 나노 구조가 만들어낸 고유한 패턴은 절대 복제할 수 없다"며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고유 정보를 숨기거나 선택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고차원 보안 인증 기술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정현호 부교수/사진=류준영 기자
광주과학기술원(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정현호 부교수/사진=류준영 기자


빠르고 정밀한 제작 공정…다양한 활용 시나리오


정 부교수 연구팀이 이 기술로 만든 보안셀은 빠르고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 약 2인치(지름 약 5cm) 웨이퍼 한 장으로 제작할 경우 1분 정도 걸린다. 그는 "액체 상태의 나노입자를 기판에 뿌리고 10초~1분가량 기다리면 입자들이 자동으로 자리 잡는 방식으로 공정을 구현했다"며 "한 장의 웨이퍼로 최대 2만2500개의 셀을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약 2만개의 셀 중 무작위로 추출한 500개 샘플을 분석한 결과, 샘플 간 유사도가 99.9% 이상 다르며 동일 패턴 재현 확률은 사실상 0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를 주도하고 해당 논문의 제1저자인 김규린 연구원은 "홍채나 지문 인식처럼 오차율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고온·고습·마찰 등 다양한 환경 변화에도 산란 패턴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육안으로는 기존 제품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디자인을 해치지도 않는다.

자료=GIST
자료=GIST
연구팀은 이 기술을 명품 시계 유리, 반도체 칩 패키지 표면, 의약품 1차 용기 곡면 등에 적용하면 진품 인증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품 표면의 코드를 전용 리더기로 스캔하고 서버에 등록된 원본 데이터와 비교해 진위를 판별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명품 감정, 반도체 사후관리(A/S), 리콜 관리, 고가 주류 단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즉시 활용 가능하다.

연구팀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활용한 인증 기술 개발에도 착수했다. 김 연구원은 "소비자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정품 인증을 할 수 있게 되면 범용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며 "나노입자의 크기와 패턴을 조정해 10~50배 수준의 모바일 줌으로도 무작위 픽셀이 식별되도록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정 부교수는 "자연 속 질서와 무질서의 공존을 나노기술로 재현해 외형은 같아 보여도 복제할 수 없는 광학 정보를 구현했다"며 "이 기술은 고급 소비재부터 의약품 검증, 국가 보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강력한 위조 방지 수단으로 쓰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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