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워하는 게 게임 맞나요?

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기사 입력 2023.01.3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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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인지과학자)
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인지과학자)
강연 중 팔짱을 끼고 노려보는 청중과 가끔 마주친다. 게임을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할 때다. 게임산업의 미래, 게임 과몰입 등 어떤 주제를 놓고 얘기를 해도, 그런 분들은 날이 선 질문을 던진다. 게임 때문에 아이들이 망가지는데 왜 게임 회사는 게임을 만들고, 왜 국가는 이를 묵인하며, 왜 당신 같은 교수는 게임 회사를 돕는 연구를 하느냐는 울분을 토한다.

이들은 청소년이 늦은 시간에 게임을 못 하게 기술적으로 막자고 한다. 게임을 못 하게 막으면 무엇을 하리라 예상하는지 물으면, 그 시간에 공부하거나 책을 읽으리라 기대한다. 안타까운 오산이다. 청소년이건 성인이건 비슷한 형태로 통제를 한 경우 실험 결과는 똑같다.

게임을 못 하게 한다고 그 시간에 공부나 일을 더 하지 않는다. 부모가 권장하는 책, 회사에서 자기계발서라고 던져준 책을 읽지 않는다. 일찍 잠자리에 들지도 않는다. 게임을 못 하게 막으면 그 시간만큼 다른 여흥 거리를 찾는다. 아이의 공부 분량이나 성적이 부모의 눈에 차지 않겠으나 아이의 입장은 다르다. 자신은 나름 힘들게 공부했으니 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게임을 막으면 다른 놀거리를 찾는다.

문제는 여기서 더 커진다. 아이가 게임 말고 무엇을 하며 놀까? 공터가 사라지고 서로 다른 학원 시간으로 바삐 돌아가는 일상에서 아이들은 마땅한 놀거리가 없다. 게임은 가장 좋아서 찾는 놀이가 아니다. 힘없는 아이가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놀이다.

이렇게 설명해도 여전히 '게임은 싫어요'를 외치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다른 놀거리를 찾아줘야 한다. 최근 한 달간 아이와 함께한 놀이가 무엇인가? 지금 당장 아이가 함께 놀고 싶다고 하면 어떤 놀이를 하겠는가? 질문에 답하기 곤란하다면 게임하는 아이를 구박하지 말고 애처롭게 여겨야 한다.

나 때는 게임도 없었고 다른 놀거리가 없어도 잘만 놀았다고 항변한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요즘 아이들의 학습량은 나날이 늘고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이라고는 피아노, 태권도 정도였다. 게임의 필드가 아닌 동네 골목을 헤집고 다니면서 놀았다. 일주일에 열 곳의 학원에 다니는 현재의 아이들은 시간적 여유, 인간적 어울림 측면에서 정서적 빈곤층이다. 불편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게임을 20년 넘게 연구해왔으나 게임이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놀이라고 보진 않는다. 다만 최악의 놀이도 아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게임 이외의 놀거리가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그런 부족함에 대한 모든 화살을 게임이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다.

우리가 미워할 대상은 게임, 게임 회사, 게임 연구자가 아니다. 아이들의 시간과 어울림을 빈곤하게 만들어낸 교육, 거주 환경, 경쟁 체제 등 전반적 사회 시스템을 돌아봐야 한다. 게임이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도 무엇 하나 바뀌지 않는다. 헛된 사과를 받고 잠시 기분 전환하려는 게 아니라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원한다면, 미움의 대상, 정확히 말하자면 개선의 대상을 제대로 찾아야 할 때다.
  • 기자 사진 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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