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지금이 미래 위한 '마중물' 뺄 때인가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기사 입력 2022.11.18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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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만 해도 활기가 넘치던 벤처투자 시장이 불과 몇 개월 새 꽁꽁 얼어붙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벤처투자액은 1조2525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40.1% 급감했다. 특히 100억원 이상 대형투자가 크게 줄었다. 3분기에 100억원 이상 투자를 유치한 기업은 22개사로 전년 동기(43개시)는 물론 2020년 3분기(27개사)보다 적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여파로 경기가 크게 위축되면서 투자심리가 갈수록 악화하는 모습이다.

최근엔 해외 투자자들도 국내 스타트업 투자에 소극적으로 돌아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한 외국계 벤처캐피탈(VC) 대표는 "쿠팡 상장 이후 한국 (스타트업) 투자를 검토하던 해외 투자자들이 계속 결정을 미루고 있다. 기존 포트폴리오사 리스크 관리에 더 신경 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난해 쿠팡의 나스닥 상장으로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 빅테크(대형 IT기업) 성장둔화 등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 역시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분위기가 돌변했다는 것이다.

실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3분기 글로벌 벤처투자액은 총 745억달러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1640억달러에서 55% 급감한 수치다. 전분기에 비해서도 34% 줄어들면서 3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3분기 국내 100억원 이상 대형투자가 급감한 것도 큰손 역할을 해온 해외 투자자들이 몸 사리기에 들어간 것과 무관치 않다.

벤처투자 열기가 급격히 식어버리면서 초기기업은 물론 잘나가던 유망 스타트업들마저 제때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폐업하거나 구조조정 한파에 내몰린 실정이다. 이륜차 배송플랫폼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는 최근 희망퇴직으로 인력을 100명가량 줄였고 수산물 배송플랫폼 오늘식탁, 재능공유 플랫폼 탈잉 등도 구조조정을 계획하거나 진행 중이다.

게다가 아마존, 트위터, 메타(옛 페이스북) 등 미국 빅테크발 구조조정 한파까지 몰아치면서 스타트업 고용시장엔 위기감마저 감돈다. 한때 채용경쟁으로 몸값이 치솟은 IT(정보기술) 개발자들마저 고용불안에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이대로 가다간 청년고용의 한 축을 담당하는 스타트업 고용시장이 얼마 못 가 역성장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지난해 벤처·스타트업 3만6209개사의 고용은 76만4912명으로 전년 대비 9.4% 증가했다. 우리나라 전체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율 3.1% 대비 3배 이상 높은 수준이었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지만 정부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모태펀드 예산을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대폭 삭감했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 모태펀드 예산은 3135억원 규모로 올해보다 39.7%, 지난해와 비교하면 70% 이상 급감했다. "선진국처럼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자생적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정책자금 비중이 지나치게 높으면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

하지만 정책은 타이밍도 중요하다. 아무리 바른 정책이라도 시기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투자 혹한기에 마중물마저 줄이는 것은 비 오는 날 우산을 뺏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본시장 경색과 경기불황 여파로 대기업과 금융사들마저 투자보다 현금확보에 주력하는 등 민간의 투자여력도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옛말에 '수도거성(水到渠成) 과숙체락(瓜熟蒂落)'이라 했다. 지금은 창업-투자-성장-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고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를 혁파하는 등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다 성숙하게 만드는데 정책역량을 집중할 때다. 그렇게 여건이 무르익으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시장은 민간 주도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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