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미국 경영학자 톰 피터스는 "벤치마킹이 아니라 퓨처마킹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의 경험이나 성공에 주목하기 보다는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앞서 나간 해외기업을 따라가는 것을 넘어 차별화를 통해 글로벌 유니콘으로 성장할 기회를 함께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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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눈은 단지 마음뿐 아니라 전신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창이기도 하다. 특히 '망막'은 몸 속 혈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장기 중 하나로 다양한 질환의 조기 진단 지표가 되고 있다.
의료 AI(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이제는 단순히 시력이나 안과 질환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질환, 알츠하이머, 만성 콩팥병, 심지어 ADHD까지 망막 이미지를 통해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들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경쟁에 뛰어든 상태다.
정수민 IMM인베스트먼트 헬스케어 전문 심사역은 "망막 이미지로 다양한 질환을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에 이어 최근엔 이를 상용화할 수 있는 솔루션들이 본격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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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봐도 알츠하이머 안다?…美 스타트업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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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막으로 다양한 질환을 예측하는 국내외 스타트업들/그래픽=이지혜망막 기반의 질환 예측 기술은 이미 세계 주요 학술지에서도 다수 소개돼 왔다. 2018년 구글 연구팀은 과학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에 망막 이미지만으로 환자의 나이, 성별, 흡연 여부, 혈압 등 건강 정보를 예측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지현 김안과병원 망막병원 전문의는 "망막은 조영제를 투입해 혈관을 관찰하지 않고 안저촬영 등을 통해 동맥이나 정맥, 모세혈관의 석회화나 출혈, 누출 등을 직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며 "특히, 당뇨나 혈압 등은 미세혈관에 가장 먼저 증상이 나타나는 만큼 관련 질환을 조기에 진단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 스타트업 레티스펙(RetiSpec)은 망막 이미지를 통해 알츠하이머를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했다. 알츠하이머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망막에서도 축적되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질환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다는 원리다.
레티스펙은 지난해 비만치료제 '마운자로' 개발사 일라이 릴리(Eli Lilly)를 포함한 글로벌 투자사들로부터 약 140억원(1000만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현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허가를 준비 중이다.
망막 검사로 당뇨병도 진단할 수 있다. 미국 스타트업 디지털 다이애그노스틱스(Digital Diagnostics)와 이스라엘 스타트업 에이아이 헬스(AEYE Health)는 망막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당뇨병 진단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디지털 다이애그노스틱스의 '루미네틱스코어(LumineticsCore)'는 안저카메라로 촬영한 망막 이미지를 1분 이내 분석해 당뇨병성 망막증 유무를 알려준다. 에이아이 헬스는 역시 휴대용 안저카메라로 양쪽 눈을 촬영해 신속히 진단 결과를 제공한다. 두 솔루션 모두 미국 FDA 승인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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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심혈관 질환도 예측…선봉장 선 K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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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웨일의 심혈관 질환 위험 예측 솔루션 '닥터눈 CVD' 화면/사진제공=메디웨일국내 스타트업 메디웨일은 세계 최초로 망막 이미지를 통해 심혈관 질환 위험을 예측하는 AI 솔루션 '닥터눈 CVD'를 상용화했다. 분당서울대병원, 검진센터, 동네 의원 등 80여개 의료기관에서 실제 활용 중이다.
메디웨일 관계자는 "심혈관 예측 AI 연구는 다수 있었지만, 실제 의료기기로 인증받고 병원에 공급 중인 사례는 메디웨일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닥터눈은 기존 심혈관 예측 검사보다 간편하면서도 정확도가 높고, 방사선 노출 없이 검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메디웨일은 2025년 FDA 인허가를 목표로 준비 중이며, AI 업계 최초로 '드노보(de novo)' 트랙을 활용할 계획이다. 드노보는 FDA가 기존에 유사 기술이 없는 신기술에 부여하는 최초 승인 방식이다.
메디웨일은 심혈관 외에도 만성 콩팥병 예측 솔루션 '닥터눈 CKD'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기존 혈액·소변 검사 대신 망막 이미지 한 장으로 콩팥 질환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을 목표로 하는 국내 스타트업 자이온프로세스는 망막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유도체 기반으로 검출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최근에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천근아·최항녕 교수팀이 망막 안저 사진으로 ADHD를 예측하는 AI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안저검사는 간편하고 빠르며, ADHD의 실행기능 장애까지 예측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밝혔다.
정수민 심사역은 "대부분의 성인들이 매년 망막촬영 포함한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 데다, 당뇨병 환자들이 주기적으로 안과 검사를 받고 있어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한 것이 한국 스타트업의 장점"이라며 "메디웨일은 미국 국립보건원(NIH) 데이터, 싱가포르 안과 센터 등 다인종 데이터베이스까지 확보한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