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편집자주] K팝 아이돌을 모티브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흥행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케데헌은 왜 한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걸까. 전 세계가 열광한 K컬처 스토리에 정작 한국 자본도, 제작사도 숟가락을 얹지 못했다. 정부는 '제2의 케데헌'을 찾으라며 예산을 늘리는데 현장에선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발을 구른다. '문화강국'이라는 기치가 무색한 K-콘텐츠펀드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최근 5년 청산된 K-콘텐츠펀드 수익률/그래픽=이지혜K-콘텐츠펀드에 정부가 매년 수천억원의 예산을 지원하는데도 정작 투자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낮은 수익률(IRR)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정부가 시장실패 영역을 보완하기 위해 투자조건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설정하면서 산업 전반에 자금이 돌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해당 영역의 벤처투자가 K-콘텐츠 산업 잠재력을 결정하는 만큼,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청산된 모태펀드가 출자한 K-콘텐츠펀드(문화·영화 계정, 전략·글로벌 계정 제외) 9개 분야 자펀드들의 수익률 중위값(이하 수익률)은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소수의 '대박' 펀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손실을 기록했다는 의미다. K-콘텐츠펀드는 정부 예산에 민간의 자금을 더해 조성하는 펀드로, 콘텐츠·영화 프로젝트나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특히 일부 영역에서는 수익률이 -10%에 달했다. 해외 시장을 겨냥해 제작한 영화·드라마 등에 투자하는 '글로벌콘텐츠' 영역은 -16.2%, 제작 초기 단계의 영화·드라마 등에 투자하는 '제작 초기' 영역은 -9.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밖에 문화산업(-8.7%), 게임(-7.9%), 융합콘텐츠·기획개발(6.8%) 등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였다. 가장 선방한 공연예술 영역도 수익률은 -0.9%에 불과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수익률이 이보다는 소폭 증가했으나 다른 영역과 비교하면 낮은 것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정책 목적이 있는 모태펀드 특성상 수익률이 최우선시되는 건 아니지만 K-콘텐츠펀드의 수익률은 과도하게 저조하다는 평가다. 같은 기간 모태펀드가 출자한 전체 자펀드 중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는 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에 투자하는 인큐베이팅 펀드(-2.5%)와 소재·부품·장비 펀드(-0.1%)뿐이었다. 나머지 21개 펀드는 모두 1% 이상의 수익률을 보였다. 제약·헬스케어 펀드(41.0%)나 해외진출펀드(14.7%), R&D 사업화(13.6%) 등 10% 넘는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도 있었다.
낮은 수익률은 민간자본의 참여를 가로막는다. 정부가 예산을 늘려도 함께 투자할 민간 출자자(LP)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실제 2023년과 2024년 대성창업투자와 코나벤처파트너스는 K-콘텐츠펀드 운용사(GP)로 선정됐지만, 출자자 모집에 실패해 GP 자격을 반납했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한국벤처투자가 진행한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에서 K-콘텐츠펀드 운용사 선정 평균 경쟁률은 평균 3.3대1로, 중진(중기)계정 평균인 4.3대1을 밑돌았다. 주요 모태펀드 출자사업 경쟁률/그래픽=이지혜한 벤처캐피탈(VC) 심사역은 "문화·콘텐츠 분야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VC들이 있지만 소수"라며 "투자수익을 내지 못하는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해 대다수 VC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VC 심사역도 "여러 가지 펀드를 운용하는 대형 VC들도 문화·콘텐츠 분야 펀드는 맡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업계는 까다로운 투자 기준 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문화·영화계정 투자처를 엄격하게 설정해서 펀드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해외에서 흥행한 특정 영화가 국내에서 더 많은 관객을 끌어모을 경우, 국내 매출 비중이 올라가면서 해외 매출 비중 20% 이상 영화에 투자하도록 한 글로벌콘텐츠 펀드의 주목적 투자처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에 투자한 VC는 펀드 목적대로 투자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를 받게 되고 차후 출자사업의 페널티로 이어진다. 콘텐츠의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해 굿즈나 푸드를 만드는 기업도 주목적 투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한 VC 심사역은 "문체부가 K-콘텐츠펀드의 투자 주목적 범위를 결정하면서 업계와 소통이 부족했다"며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으로 입증된 한국의 콘텐츠 경쟁력이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투자기준 완화 등 더 많은 자본이 유입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