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K팝 아이돌을 모티브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흥행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케데헌은 왜 한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걸까. 전 세계가 열광한 K컬처 스토리에 정작 한국 자본도, 제작사도 숟가락을 얹지 못했다. 정부는 '제2의 케데헌'을 찾으라며 예산을 늘리는데 현장에선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발을 구른다. '문화강국'이라는 기치가 무색한 K-콘텐츠펀드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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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케이팝 더 넥스트 챕터(K-Pop:The Next Chapter)에서 K팝의 현재와 앞으로의 비전을 논의하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메기 강 감독, 영화 삽입곡을 부른 트와이스(TWICE)의 지효와 정연, 프로듀서 알티(R.Tee), 음악 평론가 김영대가 출연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정부 예산이 투입된 K-콘텐츠펀드의 미소진 투자금(드라이파우더)이 매년 급증하고 있다. 영화·드라마 등 각종 콘텐츠 제작비용 급증으로 흥행에 성공해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구조가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예산을 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IP(지적재산권) 산업화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제2의 케데헌' 발굴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28일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플랫폼 '유니콘팩토리'가 문화체육관광부·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종합 분석한 결과, 최근 4년간(2022~2025년 5월 기준) 모태펀드가 출자한 K-콘텐츠펀드(문화·영화 계정 합산, 전략·글로벌 계정 제외) 결성액은 총 2조7470억원으로 이중 37.5%(31조296억원)만 투자됐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미소진 투자금은 운용비 10%(2747억원)를 뺀 1조4427억원이다. 전체 출자금의 50% 이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펀드의 미소진 투자금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 10% 수준이던 미소진 투자금 비율은 2023년 35%를 넘어서더니 지난해엔 50%를 웃돌았다. 이는 이는 국내 전체 벤처펀드의 미소진 투자금 비율이 2023년 평균 17.4%에 불과했고, 지난해엔 결성액을 초과하는 투자가 이뤄진 것과 비교할 때 상당히 저조한 수준이다.
최근 4년간(2022년~2025년) 결성된 K-콘텐츠펀드 현황, K-콘텐츠펀드 미투자금 증감액/그래픽=이지혜 연도별 펀드결성액 대비 미투자금 비율 추이/그래픽=이지혜이처럼 K-콘텐츠펀드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까다로운 투자기준 때문에 투자대상 발굴이 쉽지 않은 데다 콘텐츠 제작비용 상승 등으로 수익을 올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실제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K-콘텐츠펀드 중 2019~2023년 청산한 문화·영화 계정 9개 부문 자펀드 수익률은 대부분 마이너스였다.
한 대형 벤처캐피탈(VC) 대표는 "과거 영화와 드라마에 투자했었는데 정산 때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황당한 경험이 있다"며 "그 뒤로 문화 콘텐츠 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들이 배우·감독 등 몸값을 올려놓아 투자하기 더 어려워진 것으로 안다"며 "딥테크 등 투자처가 많은데 골치만 아픈 문화 콘텐츠에 굳이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 에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진 제공=넷플릭스 문화강국을 정책 목표로 세운 정부가 관련 예산을 파격적으로 늘린 것도 드라이파우더가 점점 증가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가뜩이나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쌓여 있는데 내년 출자 규모가 더 늘어나는 것은 예산낭비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예산이 부족해 '케데헌' 같은 대박 작품을 놓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단발성 프로젝트 투자보다는 지속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지적재산권(IP) 산업 활성화 등 문화 파이프라인을 심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통상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수출이 용이한 문화콘텐츠 등 소프트 머니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명 대한상공회의소 산업혁신본부장은 "한국은 미국·일본은 물론 중국에 조차 IP 시장 경쟁력이 뒤진다"며 "필요하다면 IP 전략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케데헌 법안'을 만드는 한편 해외 플랫폼에 대응할 IP 주권 펀드도 하루빨리 기획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