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스타트업 규제혁신, 방향만큼 속도가 중요한 이유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기사 입력 2023.12.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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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스타트업포럼 최성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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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이 있다. 목표를 향해 갈 때 방향이 맞으면 속도가 느리더라도 언젠가 도착하지만 잘못된 방향을 설정하면 아무리 빠르게 가더라도 목표점에 도달할 수 없으니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다. (속도가 이미 속력에 방향을 포함한 벡터값이라 틀린 이야기라는 '이과적 감성'은 차치하자.)

하지만 현실에선 방향만큼이나 속도가 중요한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시간이 무한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느리더라도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특히 빠르고 유연한 것이 생명인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방향과 속도는 꼭 잡아야 하는 두 마리 토끼다.

특히 스타트업에 대한 규제혁신의 속도를 보면 방향만큼 속도가 중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2017년 글로벌 100대 유니콘 스타트업의 사업모델을 국내 규제로 분석했을 때 56개사가 사업이 불가능하거나 제한될 것으로 나타났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22년 동일 대상을 재조사하니 55개사의 사업이 규제에 저촉됐다. 그야말로 거의 진전이 없었다는 얘기다. 5년 새 국내에 도입할 수 없었던 55개사 중 21개 스타트업은 상장에 성공했고 평균 7배가량 성장해 시가총액이 합계 420조원에 달했다. 우리가 규제혁신에 미적대는 사이 그만큼의 성장기회를 놓쳤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차고 넘친다. 최근 글로벌100대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국내 규제저촉 여부를 분석했을 때도 34개사는 사업이 불가능했고 26개사는 제한적으로만 가능했다. 정부도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육성하겠다는 방향에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규제가 미비하거나 낡은 규제가 그대로 적용되거나 지나치게 높거나 불명확한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규제혁신의 방향보다 속도가 문제인 것이다.

얼마 전 법무부가 리걸테크 스타트업 로톡에 참여한 변호사 징계를 취소한 일이 있었다. 변호사협회의 부당한 징계를 취소한 합당한 조치였고 로톡은 법적 분쟁을 종식하고 리걸테크 유니콘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연하고 환영할 일이지만 변협과의 분쟁은 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 사이 전세계 리걸테크 스타트업은 7000개사 이상, 유니콘도 10개사 넘게 등장했지만 우리나라는 불과 30여개 스타트업만 존재한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은 리걸테크 법·제도를 정비해 혁신산업을 뒷받침해주지만 우리는 여전히 논의만 진행 중이다. 남들이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다. 로톡 역시 8년의 분쟁기간에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는 등 생존의 위기에서 기사회생하는 중이다.

최근 정부·여당이 코로나19 이후 고사위기에 처한 비대면진료를 빠르게 제도화하겠다는 반가운 입장을 발표했다. 사실 비대면진료는 주요 선진국은 모두 제도화했으나 우리나라만 코로나19 시기에 한시허용으로 제한됐다. 그래도 30여개 스타트업과 의료분야 기업들이 진출해 큰 성과를 남겼으나 한시허용이 끝나자 바로 고사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10곳 넘는 스타트업이 버티지 못하고 서비스를 중단했다. 대표 스타트업인 닥터나우조차 사업방향을 전환하고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황이다. 역시 방향보다 속도의 문제다. 스타트업들은 기약 없는 비대면진료 확대와 제도화를 기다리고 있을 형편이 못된다. 결국 언젠가는 제도가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글로벌과 우리의 격차는 제도개선의 속도 차이만큼 벌어지게 된다.

물론 규제를 혁신하는 것은 신중하게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외국에서도 제도개선에 몇 년이 걸린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히 해결하는 것과 논의만 진행하고 되돌이표인 것은 분명 다르다. 특히 비대면진료는 코로나19 시기부터 지금까지 충분한 논의와 임상경험이 축적됐다. 또 한 번 만시지탄이 되지 않도록 속도를 내주길 바란다.
  • 기자 사진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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