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고금리 시대가 뒤집어 놓은 많은 풍경 중에는 스타트업 씬도 있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빙하기로 창업자가 스타트업을 성공시키고 자기 지분을 매각해 큰 돈을 벌어 떠나는 '엑싯'(exit)의 꿈은 훨씬 더 요원해졌습니다. 미국 스타트업 씬의 분위기는 어떨까요? 이를 피부로 느끼는 듯 생생하게 표현한 글이 최근 뉴욕매거진에 실려 반가운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어느 정도 성공적이지만 엑싯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중견' 스타트업의 창업자인 익명의 글쓴이는 자신이 창업하게 된 계기부터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우 솔직하게 전합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4~5년 전 어느 날, 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20대로 중견급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뭘 창업할지 혹은 어떤 분야에 집중하고 싶은지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는 창업자가 되는 것이 올바른 다음 단계라고 확신했다.
대학에서 나는 인문학 분야를 전공했다. 철학자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난을 감수할 배짱이 없었다. 중상류층에서 탄탄하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혹은 그 때문에--늘 가난해지는 것이 걱정거리였다.
자본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은 졸업 후 몇 년이 지난 후, 내 모교에서 가르쳤던 전직 교수님의 신간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을 때 구체화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청중석에서 나를 본 교수님은 수상 경력에 빛나는 작가, 인기 있는 서점의 주인, 저명한 평론가 등 여러 저명한 문인들과 함께 하는 호화로운 만찬에 나를 초대했다.
유명 작가들에 대해 수다를 떨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지만 계산서가 도착했을 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은밀하게 테이블을 둘러봤고--IT 업계에 종사하는 젊은 나와 나보다 수십 살 더 나이가 많지만 예술에 대한 헌신 때문에 가장 먼저 계산서에 손을 뻗지 못하게 된 그들--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계산을 할 만한 부자가 주변에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나눠서 냈다.)
나는 늘 계몽주의 시대의 젠트리들이 부러웠다. 똑똑했기 때문에 지적, 예술적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말고는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젠트리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는 집안에 돈이 많은 사람들 또한 부러웠다. 만일 내 스스로 집안의 재산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충분히 부르주아적인 생활수준을 포기하지 않고도 내 지적 야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슈퍼파이어' 같은 이름의 레딧 게시판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자신의 '숫자', 다시 말해 영원히 기분 내키는대로 살 수 있을 만큼의 금액에 집착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느 화창한 주말, 친구들은 해변에 놀러 간 사이 카페에서 스프레드시트를 펼쳐놓고 예상되는 평생 지출의 현재 가치를 더하여 나 자신에게 필요한 금액을 추산하던 게 기억난다. 물론 안전인출률(safe withdrawal rate), 가상의 자녀를 위한 사립학교 학비, 가끔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하는 만찬과 같은 수당도 고려해야 했다.
나는 600만달러(78억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전략은 목적과 수단을 부합시키는 것이다. 나의 목적이 빠른 재정적 독립이라면, 나의 수단은 젊음, 혈통, 학자금 대출 없음, 뛰어난 업무 능력, 조합수학 능력 부족(때문에 퀀트투자에는 적합하지 않았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상 과학 소설을 좋아하고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놀았을 정도로 테크놀로지를 좋아했던 게 도움이 됐다.
아마도 가장 현명한 방법은 FAANG 중 한 곳에서 일하면서 안정적으로 연간 수십만달러를 버는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는 2010년대 중반이었다. 아직 투자 광풍이 극에 달하기 전이었지만,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에게 자본을 쏟아붓고 있었다.
나와 같은 졸업반 학생 중 하나는 창업한 지 2년밖에 안 된 스타트업을 인생을 바꿀 만큼 큰 금액에 팔아치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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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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