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문지르니 피부에 '쏙'…韓기술, 유럽 명품 화장품도 홀렸다

고석용 기자 기사 입력 2023.08.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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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UP스토리]이범주 라피끄 대표 "식물연화기술로 화장품 제조, 300만병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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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주 라피끄 대표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이범주 라피끄 대표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10~15%. 통상 화장품들이 식물에서 추출해내는 유효성분의 비율이다. 예컨대 염증완화에 효과가 있는 꽃잎 10g을 사용해 화장품을 만들어도, 추출·가공하고 나면 화장품에 담기는 꽃잎의 성분은 1g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럼 꽃잎 10g을 통째로 피부에 흡수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스타트업 라피끄는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식물체를 피부에 문지르면 스며들게 가공하는 '연화기술'을 개발하면서다. 이를 통해 라피끄는 화장품에 꽃·잎·과일·해조류 등 식물을 그대로 갈아 넣어 제조한다. 그 결과 화장품에 식물의 유효성분을 83.7%까지 담을 수 있게 됐다. 같은 양의 식물을 사용해도 일반 화장품보다 유효성분이 7~8배, 종류에 따라서는 최대 120배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범주 라피끄 대표는 "화장품은 당연히 피부에 흡수가 돼야 하니까, 피부에서 자연스럽게 녹는 성분들만 추출해서 써야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있었다"며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식물을 통째로 피부에 바를 수 있도록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연화기술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피부에 문지르면 스며드는 식물체…30개 브랜드서 러브콜"


라피끄가 제조한 화장품에는 식물 조각이 들어있다 /사진=라피끄의 자체 브랜드 플렌티플랜트
라피끄가 제조한 화장품에는 식물 조각이 들어있다 /사진=라피끄의 자체 브랜드 플렌티플랜트
실제 라피끄가 제조한 화장품에는 1~2mm의 식물 조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과육이 함유된 과일주스와도 비슷한 형태다. 해당 조각들은 피부에 문지르면 어느 순간 사라지면서 피부에 스며든다.

이 대표는 "연화기술은 식물체를 구성하는 셀룰로오스 네트워크를 절단시켜 문지르는 힘만으로도 피부에 스며들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라피끄가 연화기술 관련 보유한 기술 특허는 총 20개다. 라피끄는 현재 장미꽃잎, 녹찻잎, 미역귀, 다시마 등 38가지 식물체에 해당 기술을 적용해 화장품으로 제작하고 있다.

이미 라피끄에는 대기업 화장품 브랜드들의 ODM(주문자 개발생산) 계약 관련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판매되는 제품만 30여개 브랜드 50여종으로, 누적 생산량은 300만개를 넘어섰다. 이 대표는 "식물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중 화장품들은 대부분 라피끄의 기술로 생산한 것이라 보면 된다"고 했다. 라피끄는 최근에는 유럽과 일본의 글로벌 명품 뷰티기업들과도 협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자체 브랜드 '플렌티 플랜트'도 출시했다. 이 대표는 "화장품 업계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자체 브랜드를 꿈꾸겠지만, 플렌티 플랜트는 제조뿐 아니라 원료 가공 단계부터 라피끄의 핵심기술을 적용한 만큼 더 의미가 크다"며 "내년에는 직접 스마트팜도 운영하며 식물 원재료 공급부터 소비자 판매까지 모든 단계를 내재화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맥주박 등 화장품 원료 업사이클링 기술에도 도전


맥주박을 업사이클링한 소재로 만든 핸드크림. /사진=와디즈
맥주박을 업사이클링한 소재로 만든 핸드크림. /사진=와디즈
라피끄의 화장품 소재 관련 연구는 연화기술에서 그치지 않는다. 라피끄는 최근 연화기술과 생물 전환(발효 등)기술을 활용해 버려지는 식품 부산물을 화장품 원료로 업사이클링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이미 맥주 제조 후 남은 맥주박(麥酒粕, BSG)을 업사이클링 하는 기술 개발은 완료했다. 라피끄는 지난해 오비맥주와 함께 맥주박을 탈모방지, 항산화, 미백 효과가 있는 화장품 원료 4가지로 업사이클링하고 이를 활용해 핸드크림과 샴푸를 만들었다. 샴푸는 오비맥주의 사은품으로, 핸드크림은 크라우드펀딩으로 대중에 공개했다.

이 대표는 "맥주박은 알코올을 만들고 버려지는데다 1톤을 매립하면 513kg의 탄소가 배출되는 만큼 환경문제도 유발한다"며 "그러나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한 식물 소재로 화장품 원료로서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장품을 통해 맥주박 폐기물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새로운 쓰임을 만들어 버려지는 양을 줄이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라피끄는 다른 식품 대기업들과도 식품 부산물 업사이클링에 도전 중이다. 해당 기업들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과 오픈이노베이션 측면에서 공동연구에 적극적이다. 이 대표는 "현재 식품 대기업들과 13가지 식품 부산물 소재에 대해 연구개발 중"이라며 "어떤 소재가 업사이클에 적합한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 경력 18년…기술력 앞세워 자체 브랜드 승부수"


이 대표는 창업 전 한국콜마에서 연구개발을, 홈플러스에서 화장품 유통업무를 경험했다.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소재·원료를 연구해왔다. 화장품 제형, 유통, 소재까지 전주기를 모두 경험해본 셈이다. 관련 경력은 18년에 달한다.

이 대표는 "업계에 종사하면서 식물성 원료가 화장품의 효능보다는 사실상 마케팅 이미지에 그친다는 회의감이 들었다"며 "기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 싶었고 결국 라피끄를 창업하게 됐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라피끄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국내를 넘어 일본·유럽의 화장품 브랜드에서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서울경제진흥원(SBA)도 오픈이노베이션 성공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이라고 보고 대기업을 지속적으로 연결해주고 있다. 올해 5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 바이오·헬스 분야 기업으로도 선정됐다. 하나벤처스, 퀀텀벤처스, 인라이트벤처스 등 벤처캐피탈(VC)들은 라피끄에 누적 57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이 대표는 "이전까지 기술력을 고도화하고 ODM 사업으로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다져왔다면, 이제부터는 자체 브랜드를 통해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낼 때라고 생각한다"며 "마케팅보다 앞서 기술력으로 시장에서 인정받는 화장품 브랜드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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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주 라피끄 대표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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