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부가 돈 풀겠다는데…불안한 중소형 VC들

고석용 기자 기사 입력 2025.12.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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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정부가 연간 벤처투자 시장규모를 40조원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면서 정책자금 공급을 대폭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이를 실제로 운용할 벤처캐피탈(VC)업계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정책자금이라는 '마중물'이 갑자기 커져 이에 상응하는 민간자금을 매칭하고 신규펀드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업계 안팎에선 자금운용 역량을 갖춘 대형 VC엔 자금이 집중되고 그렇지 못한 중소 VC는 펀드결성 자체가 어려워지며 '빈부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정부는 총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이 중 일부를 벤처펀드 출자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국민성장펀드는 벤처펀드의 투자 주목적을 설정하고 출자금의 상당부분을 책임지는 앵커 LP(출자자) 역할을 맡게 된다. 아직 세부 구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정부는 이 과정에서 민간 금융기관이 참여해 공동 앵커 LP로 나서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는 앵커 LP의 출자규모를 늘린다는 취지지만 업계에선 오히려 펀드결성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기관은 지난해 결성된 벤처펀드에서 가장 큰 27.2%의 비중을 차지한 출자자다. 정책금융 출자비중(23.0%)보다 높은 수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금융기관이 앵커 LP로 참여할 경우 해당 금융기관이 이를 토대로 조성되는 펀드에 추가 출자를 이어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에선 이런 구조가 특히 중소 VC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금융기관 외 다른 민간 LP로는 법인(21.9%)과 개인(10.4%) 등이 있지만 이들 역시 안정적인 운용실적을 앞세운 대형 VC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결국 중소 VC들은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대형 출자사업에 도전할 엄두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모태펀드 등 다른 출자사업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모태펀드의 내년 출자예산은 1조5700억원으로 올해(9896억원)보다 59% 늘었다. 겉으론 출자기회가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민간 LP 유치를 둘러싼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가뜩이나 민간자금이 이미 국민성장펀드 출자에 상당부분 흡수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민간 LP 확보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선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앵커 LP 매칭방식 대신 기존처럼 자펀드 결성과정에서 민간 LP 역할에 집중하되 출자규모를 단계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거론한다. 이 경우 벤처투자 시장확대 속도는 정부가 기대하는 수준보다 다소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벤처정책의 목표는 단순히 '몇조 원'이라는 숫자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과 벤처투자 생태계가 얼마나 균형 있게 성장하느냐, 다시 말해 양적 확대보다 질적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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