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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민 랩인큐브 대표 /사진=랩인큐브 제공2025년 노벨 화학상은 'MOF'(금속유기구조체)라는 혁신적 분자 구조를 개발한 오마르 M. 야기 미국 UC 버클리 교수와 기타가와 스스무(北川進) 일본 교토대 교수, 리처드 롭슨 호주 멜버른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MOF는 금속이온과 유기 분자를 연결해 만든 틀 구조로, 내부에 수많은 미세한 구멍을 갖고 있어 기체 분자 등의 흡착·저장이 가능하다. 이 같은 특징에 따라 이산화탄소(CO2) 포집, 공기 중 수분 채취, 수소 연료 저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MOF가 인류의 난제와 지구환경 문제 해결에 필요한 신소재로 새로운 가능성과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MOF 연구에 가장 선도적인 이들 3명의 과학자를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공동 선정했다.
그런데 전세계가 '꿈의 신소재'에 열광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이미 이 기술을 실험실 밖으로 끄집어내 집 거실 가전에 적용하는 데 성공한 스타트업이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화공생명공학부 교수인 최경민 대표가 설립한 '랩인큐브'(LABINCUBE)다.
최경민 대표는 노벨상 수상자인 야기 교수의 제자로서 스승이 닦아놓은 기초과학의 토대 위에 MOF의 국내 첫 상용화라는 결실을 맺었다. 야기 교수는 노벨상 수상 이후 최 대표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랩인큐브의 상용화 성과를 '훌륭한 사례'라며 추켜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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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손잡고 공기청정기 필터에 MOF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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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지혜랩인큐브가 MOF를 상용화한 제품은 LG전자(91,800원 ▲200 +0.22%)의 퓨리케어 공기청정기에 탑재된 '퓨리탈취청정 M필터'다. 공기청정기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활성탄(숯) 필터는 모든 냄새 분자를 무작위로 흡착하다 보니 효율이 떨어지고 금방 포화 상태가 되는 단점이 있다.
반면 랩인큐브의 MOF 기반 필터는 불쾌한 냄새 분자만 선택적으로 골라 담을 수 있도록 기공의 크기와 화학적 환경을 맞춤 설계했다. 이를 통해 기존 필터 대비 탈취 성능을 40% 이상 끌어올렸다.
오마르 M. 야기 미국 UC 버클리 교수가 개발한 MOF-5 구조 /사진=노벨위원회최경민 대표는 MOF를 '분자 건축물'에 비유했다. 그는 "건물을 지을 때 용도에 따라 방의 크기를 정하고 인테리어를 하듯 MOF는 금속이온을 조인트(연결점)로, 유기 분자를 H빔(기둥)으로 삼아 나노미터 단위의 미세한 공간을 설계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정집·사무실 등 공간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달라지듯 MOF 내부도 특정 분자가 가장 좋아하도록 인테리어(화학적 환경 설계)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공기청정기에 들어간 MOF는 냄새 분자가 가장 좋아하는 환경으로 꾸민 것"이라고 부연했다.
MOF는 분자 수준에서 맞춤 설계가 가능해 기존 소재가 해결하지 못하는 미세한 악취나 유해가스를 완벽히 잡아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 대표는 "활성탄 필터가 물리적으로 입자를 걸러낸다면 MOF는 특정 분자가 좋아하는 환경을 설계해 선택적으로 잡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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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테틱·바이오' 분야로도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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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르 M. 야기 미국 UC버클리대 교수(오른쪽)와 최경민 랩인큐브 대표 /사진=랩인큐브 제공랩인큐브는 MOF 설계부터 제조·양산·응용까지 전 과정을 통합하는 플랫폼 'CUBRIX™'를 개발했다. 옹스트롱(A) 단위부터 마이크로미터(μm) 단위까지 분자 공간을 자유자재로 설계할 수 있어 고객의 요구에 맞는 '맞춤형 MOF' 구현이 가능하다.
최 대표는 "그동안 MOF는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비싼 가격과 대량 생산의 어려움 때문에 실험실 차원에서만 연구됐다"며 "LG전자의 강력한 상용화 의지에 우리의 기술력이 결합되면서 세계 최초로 MOF 필터를 가전에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상용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는 "대기업 내부에서도 MOF는 전례가 없는 소재였고 양산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컸다"며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제품 납품이 아니라 'MOF가 산업에서 통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랩인큐브는 현재 두 가지를 축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첫 번째는 기체를 다루는 '에어 솔루션'이다. 공기청정기 외에도 제습기에서 물을 흡수하는 소재, 반도체 공정에서 발생하는 유해가스를 제거하는 필터 등을 개발한다. 이와 관련, 국내 반도체 대기업과 협업 중이다.
두 번째는 '에스테틱·바이오' 분야다. 최 대표는 "기존 필러나 스킨부스터는 주입 후 금방 사라지거나 효과가 일정하지 않지만, MOF는 미세 공간 속에 유효 성분을 담아 피부 속에서 천천히 방출하게 함으로써 성분의 안전성과 지속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능이 더욱 향상된 2세대 MOF 개발에도 집중한다. 그는 "더 넓은 범위의 유해가스를 잡거나 훨씬 빠른 속도로 분자를 포집할 수 있도록 해 활성탄 등 모든 흡착 소재를 기술적으로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초격차 성능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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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생존 걸린 문제에도 MOF 적극 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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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민 랩인큐브 대표 /사진=랩인큐브 제공글로벌 진출에도 속도를 낸다. 최 대표는 "LG전자와의 협업을 통한 간접적인 글로벌 진출은 물론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수출 경로를 직접 개척해 글로벌 소재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인류의 생존이 걸린 CO2 저감 문제에도 MOF 기술을 적극 접목할 계획이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원인인 탄소를 분자 단위에서 포집해 가둠으로써 기후위기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구상이다.
최 대표에게 있어서 랩인큐브를 통한 사업은 매출 증대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는 "교수로서 연구 논문을 쓰는 것이 태평양에 물 한 컵을 붓는 느낌이었다면 사업은 실제 사람들의 삶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기 중 CO2를 직접 포집해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매일 맞아야 하는 주사를 6개월에 한 번으로 줄여주는 혁신적 약물 전달 시스템을 만드는 등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높이겠다"며 "MOF의 무한한 가능성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