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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겹겹이 얹은 오래된 길 위로 고건축의 처마와 현대식 유리창이 자연스럽게 맞물린 풍경이 펼쳐진다. 가로등 대신 걸린 전통식 등롱이 은은한 빛을 내며 골목을 밝힌다. 언뜻 관광지처럼 보이지만, 이곳의 실체는 '엔젤투자촌'이다. 과거의 골목을 보존하면서 오래되고 방치된 집을 스타트업 투자·보육 기관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뒤편으로는 수백 개의 나무 기둥이 이어진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창업가들의 발걸음이 가장 먼저 닿는 '스타트업의 거리'다. 길이 99.9m, 폭 6.6m. 숫자만으로도 이 공간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중국에서 '6'은 순조로움, '9'는 가장 높은 번영을 뜻한다. 마주보게 설계된 입주 공간 사이로 뻗은 이 거대한 통로는, "창업가의 길 역시 순탄하고 오래 번영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지난 17일,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는 중국 항저우 미래과학기술지구 한가운데 위치한 저장성 핵심 창업지원 거점 '드림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알리바바 본사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자리해 있으며, 현지에서는 '제2의 마윈'(알리바바 창업자)을 꿈꾸는 청년 창업자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논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조성한 드림타운/사진=류준영 기자
드림센터의 특징은 기존 연립가옥을 철거하지 않고 내부만 리모델링해 활용했다는 점이다. 또 주변의 논과 습지도 그대로 보존한 채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시설로 설치해 '친환경 도시재생' 모델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항저우는 알리바바뿐 아니라 △스마트폰과 전기차, IoT(사물인터넷) 기기를 경쟁력 있는 가격에 파는 '샤오미' △메신저 '위챗'을 기반으로 게임·핀테크·클라우드까지 확장한 중국 최대 빅테크 그룹 '텅쉰' △고급 브랜드의 재고 상품을 온라인 특가로 판매하는 중국 대표 패션·이커머스 플랫폼 '웨이핀후이'이 탄생한 곳이다. 중국의 차세대 AI 모델로, 오픈AI의 대항마로 주목받았던 '딥시크'도 여기에 있다. 이 같이 쟁쟁한 ICT(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이 많아 일명 '중국판 실리콘밸리'로도 불린다.
항저우시는 이런 기업들을 더 많이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2015년 드림센터를 개관했다. 축구장 24개를 합친 17만㎡(약 5만1425평)에 달하는 넓은 부지를 갖추고 있으며, 개관 초기에는 마윈이 직접 초대 학장을 맡아 예비 창업가들의 멘토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현재 71개의 창업기업과 보육기관이 입주해 있으며, 곳곳에 카페와 휴식 공간이 배치돼 있다.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한 아파트들은 입주사를 위한 주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어, '일·주거·보육·투자'가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연결된 '원스톱 창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드림타운 내부 모습, 곳곳에 카페와 식당 휴식공간이 마련됐다/사진=류준영 기자
항저우 미래과학기술성 관리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드림센터 운영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총 1439개의 창업기업, 3898개의 R&D 기반 인큐베이팅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이 가운데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유니콘을 26곳이나 배출했다.
입주 기업 중 하나인 '시구커'는 영상 화질을 복원하는 AI(인공지능)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보통 TV에서 보는 4K보다 훨씬 높은 최대 12K 해상도까지 지원하는 '초고화질 라이브 방송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오래된 영상도 새 영상처럼 선명하게 되살리고 실제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한 수준의 생중계가 가능하다. 이 기술은 현재 텐센트와 화웨이 같은 중국의 대형 IT기업에 공급되고 있다.
드림센터는 중국의 젊은 창업가들에게 '성공의 관문'으로 불린다. 가장 큰 이유는 파격적인 지원 정책 때문이다. 우선 최대 300㎡ 규모의 입주공간에 대해 임대료, 관리비를 3년간 전액 면제해주며, 필요 시 최대 1000만 위안(약 20억 원)의 엔젤투자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초기 창업기업들은 대체로 상환 능력이 충분하지 않지만 드림센터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기준으로 최대 100만 위안(약 2억원)까지 대출도 지원한다. 사업 운영에 필요한 경영자금 역시 최대 30만 위안(약 6000만원)까지 별도 대출 형태로 제공된다. 투자 환경도 잘 조성돼 있다. 드림센터 관계자는 "이곳 입주 기업들은 주로 텐센트, 화웨이와 같은 대기업으로부터 직접 투자를 받는 경우가 많다"며 "이 생태계의 가장 큰 강점은 대기업과의 연결성"이라고 설명했다.
드림타운 내부 모습, 스타트업의 거리 양 옆으로 입주공간이 위치해 있다/사진=류준영 기자
반도체, AI(인공지능), 헬스케어 등 첨단 분야의 인재 확보를 위한 정책은 더 공격적이다. 해외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톱티어급 인재에게는 주택 구매비 최대 1000만 위안(약 20억원)을 지원한다. 입주 기업이 이 같은 전문 인재를 채용할 경우 최대 500만 위안의 채용 보조금도 제공된다. 또 대학 졸업생에게는 최대 18만 위안, 박사후 연구원에게는 최대 90만 위안의 정착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가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다. 이밖에 저장대학, 서호대학 등 인근 연구중심대학 및 연구기관과 연계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법률·사업 컨설팅 등도 제공하고 있다.
항저우시는 적극적인 스타트업 유치 정책을 통해 '도시 연령 구조'를 바꿔놓았다. 이 관계자는 "2011년 평균 연령이 42세였던 항저우는 2024년 32세의 '젊은 도시'로 재편됐다"고 밝혔다. 청년 인구가 늘어나자 경제 지표도 달라졌다. 최근 6년간 항저우의 기업 수익과 세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35.9%, 36%를 기록했다. 적극적인 인재·기업 유치 정책과 창업 활성화 정책이 항저우를 보다 젊고 활력 있는 도시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번 드림타운 견학에 참여한 김성근 부산대기술지주 실장은 "항저우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창업 공간이 넓고 많아서가 아니라 알리바바와 같은 빅테크 기업이 생태계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하고, 금융 지원, 인재 유치, 원스톱 행정 절차, 기업 맞춤형 서비스 등이 전부 이어지는 하나의 시스템이 완성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