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표준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융합연구원 부원장
AI, 속도·효율 높이며 신약개발 패러다임 전환…글로벌선 신약개발 전 주기에 적용
가능성 높은 분야에 집중 투자 필요…"데이터 거버넌스 및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이 핵심"

신약 개발엔 평균 10~15년이란 긴 시간이 소요된다. 타깃 발굴부터 전임상과 임상, 허가, 그리고 의약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검증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I(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신약개발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도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을 도약시킬 게임 체인저로 'AI'를 지목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지난해 1월 AI 신약개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기존의 AI신약개발지원센터를 확대해 AI신약융합연구원을 설립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표준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융합연구원 부원장을 만나 AI 신약개발의 현주소와 향후 과제를 들어봤다.
표 부원장은 "AI 신약개발 영역에서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험이 덜 축적됐을 뿐이지 기술력이 떨어지거나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이 부족한 건 아니다"라며 "좋은 의료 데이터와 대규모 의약품 생산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는 강점을 기반으로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국가 주도적으로 바이오와 AI에 엄청난 투자를 했을 뿐만 아니라 데이터 거버넌스도 갖고 있어 AI 신약개발 역량이 굉장히 높다"며 "우리도 이러한 측면을 벤치마킹해서 AI를 고도화할 수 있는 데이터 거버넌스와 인프라 구축에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미 AI 신약개발에 대규모로 투자하며 타깃 발굴부터 실제 생산에 이르기까지 신약개발의 모든 단계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주로 초기 단계에서 각 회사의 특성에 맞게 활용하고 있다. 이에 AI신약융합연구원은 개별 기업들이 수행하기 어려운 협업 시스템 구축, 로봇과 같은 하드웨어 기술 도입 등을 통해 생태계를 확대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표 부원장은 "국내 기업들은 특히 (신약 개발의) 초기 단계에 많이 집중하고 있다 보니 가상 스크리닝과 독성·효능 예측, 초기 단계 약물 디자인 등에 AI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며 "몇 년 전부턴 알파폴드 3와 같은 단백질 구조 예측 플랫폼을 활용해 구조 기반 약물 설계에도 AI를 접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타깃을 잘못 찾으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약물을 만들어봤자 결국 임상 단계에서 실패하게 돼있다"며 "업계에선 현재까지 쌓여 있는 데이터를 정리하고 오믹스 데이터와 임상 데이터 등을 결합해 AI를 활용하면 좋은 타깃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신약개발 성과가 기대되는 분야와 주목할 만한 타깃 유형에 대한 전망도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성과를 도출해내 AI 신약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은 산업계에 남겨진 과제다. 일부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기술이전 및 협업 등을 통해 레퍼런스를 쌓아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다.
표 부원장은 "표적 생물학이 어느 정도 명확하게 알려져 있으면서 빠르게 개념검증(PoC)을 할 수 있는 적응증에서 AI 신약개발이 빠르게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펩타이드는 상대적으로 구조에 대한 예측력이 좀 더 높아 단백질 구조 설계와 생성형 모델을 통해 빠르게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은 영역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I를 활용해 신규 타깃을 찾더라도 신규 타깃은 생물학이 많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그런 경우엔 생물학에 대한 튼튼한 지식이 전제가 돼야 하기 때문에 기초 과학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표 부원장은 AI 신약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짚었다. 결국 산업을 키우는 힘은 사람이란 시각에서다. AI는 분명 강력한 도구지만, 사람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이란 것이다. 이는 향후 AI 신약개발 인재 양성 방향과 연구자들의 역할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표 부원장은 "AI가 모든 걸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AI와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AI에 사람의 전문성이 녹아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전문성이 깊은 사람이 AI를 통해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측면이 크기 때문에 주니어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트레이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기존 패러다임에선 연구자들이 약물 디자인, 합성 등 각자 잘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는 연구자 본인이 생산한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게끔 만들고, 직접 문제를 정의해서 AI에게 질문하는 역량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기자 사진 김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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