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취급 받다 전세계서 러브콜…대만 정부 '반도체 승부수' 통했다

변휘 기자 기사 입력 2025.06.2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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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 新산업책략]<2>④
'반도체 도약' 이끈 차이 정부와
'80년대 영광' 되찾으려는 일본

대만 신주 지역에 본사를 둔 TSMC /사진=머니투데이DB
대만 신주 지역에 본사를 둔 TSMC /사진=머니투데이DB
TSMC는 대만 증시 시가총액의 절반을 책임지는 기업이다. 엔비디아 등 세계적인 팹리스 업체들도 TSMC의 미세공정에 기댄다. TSMC가 전 세계 파운드리의 과반 점유율을 지키는 이유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는 일종의 하청업체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2010년대 스마트폰 대중화와 최근 AI(인공지능) 경쟁으로 세계적으로 칩 수요가 폭증했고, TSMC는 대만을 저성장의 늪에서 건져낸 기업으로 등극했다. 그 뒤에는 대만 정부의 역할도 컸다.



대만 정부 "농업용수 물길, 반도체 공장으로 돌려"


대만 경제는 2000년대 들어 전례 없던 저성장을 마주했다. 독립 성향이 강했던 민주진보당 천수이볜 총통의 집권 후 양안 관계가 경색됐고, 2004년 대만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한국에 역전당했다. 뒤를 이은 국민당 마잉주 총통이 친중 정책을 내세워 대중 교역규모가 성장했지만, 오히려 중국 의존도 심화의 부작용으로 대만 내 생산과 고용이 위축됐다. 계속된 경제 부진은 민진당의 정권 탈환으로 이어졌다.

대만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그래픽=김다나
대만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그래픽=김다나
차이잉원 정부의 산업정책 슬로건 '스마트 타이완(Smart Taiwan)'은 주력인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을 기반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내용이었다. 차이 총통은 "기술력이 대만의 안보를 지키는 열쇠"라며 대만을 기술 강국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특히 마잉주 정부 8년간 양안 교류 확대의 과정에서 중국은 반도체 등 대만 주력사업 M&A(인수합병)를 노렸는데, 차이잉원 정부는 유혹을 물리치고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공을 들였다.

TSMC가 핵심이었다. 이름부터 '대만 반도체 제조회사'(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인 TSMC는 1987년 대만 국책연구소 주도로 정부가 절반가량 지분을 갖고 설립했으며, 1992년 민영화 후에도 대만 행정원 국가발전기금이 6%가량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으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대표적인 장면은 2021년 대만의 살인적 가뭄 때 연출됐다. 그해 5월 오랜 가뭄에 TSMC에 용수를 공급하는 바오산 제2저수지의 저수율이 3.17%까지 떨어지자, 차이 총통은 농업용수의 반도체 산업용수 전용을 지시했다. 미국-중국 무역 전쟁에서 반도체 부문이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부각되면서, TSMC는 이제 대만의 안보·외교 자산으로도 주목받는다.

대만 차이잉원 전 총통. /AP=뉴시스
대만 차이잉원 전 총통. /AP=뉴시스
2024년 의회를 통과한 대만판 '반도체법(산업혁신법)'은 반도체, 5G, 전기차 등 글로벌 공급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첨단 기업들의 R&D 비용 세액공제를 25%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대만 정부의 '옹스트롬(Angstrom) 반도체' 계획의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나노보다 작은 옹스트롬 단위 경쟁으로 반도체 기술력을 차별화하겠다는 목표 아래 대만 정부는 약 56억대만달러(약 2500억원)의 보조금을 관련 업체에 지급하고, 2030년까지는 생태계 기업도 완성할 계획이다. 반도체 업계 인력난 해소를 위해 2023년부터는 반도체 기업에 취업하는 외국인, 세계 상위 500대 학교 졸업생의 경우 비자 발급을 완화하는 정책도 시행했다.



영광 잃은 일본, 보조금도 규제완화도 '역대급'


1980년대만 해도 일본은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였다. 1988년 일본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50%에 달했고, 이는 미국(36.8%)을 앞서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견제에 이어 한국과 대만의 약진 등으로 2017년 일본의 점유율은 10% 밑으로 추락했다.

그랬던 일본이 반도체 산업 재건에 나섰다.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과 규제 완화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일본 유치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성과가 규슈 구마모토현의 TSMC 공장이다. 1공장은 2021년 건설 계획을 발표한 후 3년 만인 지난해 말 양산을 시작했고, 구마모토 2공장은 2027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TSMC의 일본 1~2공장 투자 규모는 200억달러(약 27조2000억원) 이상에 달하는데, 일본 정부도 1공장 건설에만 4700억엔(4조4000억원)의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또 다른 난관인 토지·산림 등 개발제한구역 규제 완화도 일사천리였다.

라피더스 발표자료. 메이드 인 홋카이도. /사진=라피더스
라피더스 발표자료. 메이드 인 홋카이도. /사진=라피더스
일본은 자국 반도체 기업인 리피더스 육성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라피더스는 2022년 일본 정부와 소니, 토요타, 키옥시아, 소프트뱅크, 덴소, NEC 등 8곳의 기업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기업이다. 홋카이도 치토세에 공장을 건설 중이며, 최첨단 2나노 반도체를 2027년부터 양산한다는 목표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금까지 리피더스에 지원 또는 출자한 금액만 1조8225억엔(17조1000억원)에 달한다.

소프트뱅크는 올해 4월 홋카이도 도마코마이시에 일본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업계에선 '라피더스의 칩을 소프트뱅크에 공급한다'는 구상이 거론된다. 후발 파운드리 업체의 최대 과제인 초기 고객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는 셈인데, 이 데이터센터 건립에도 일본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해 11월 2030년까지 반도체 및 AI 분야에 10조엔(94조원) 이상의 공적 지원을 실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금까지는 TSMC와 키옥시아, 라피더스 등을 통해 거점 제조시설을 정비했다면 앞으로는 반도체 설계 부문까지 역량을 갖추겠다는 목표다. 해당 보도에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내에서 반도체 설계와 제조까지 해내는 것은 해외 공급망의 단절이라는 리스크를 줄이고, 경제 안보 관점에서도 중요하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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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변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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