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진=gemini비상장 벤처기업에 일반 투자자들도 손쉽게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Business Development Company) 제도가 도입 논의 7년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2019년 첫 검토가 시작된 BDC는 2026년 3월부터 첫 상품이 시장에 등장할 예정이다.
BDC 도입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국형 BDC 도입 논의는 2019년 여당과 금융위원회 주도하에 금융산업 혁신 정책 과제로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2022년에는 금융위원회가 BDC 도입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고 여파로 투자자 보호 문제가 불거지면서 도입이 무산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벤처투자 활성화 방안으로 재조명받으며 BDC 도입이 급물살을 탔다.
BDC는 비상장 벤처기업 등에 투자할 수 있는 환매금지형(폐쇄형) 상장 펀드다. 개인투자자에게는 유망 벤처기업에 소액으로 분산 투자할 기회를, 기업에는 안정적인 자금조달 창구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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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레버리지·英 벤처육성 장점 합친 '한국형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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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도입되는 한국형 BDC는 표면적으로 미국의 BDC 모델을 표방하지만 실질적인 운용 방식은 영국의 VCT(Venture Capital Trust) 성격을 띤다. 큰 틀에서는 BDC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세부적인 운용 방식, 규제 등은 VCT에서 따온 하이브리드 형태다.
가장 큰 차이는 투자 대상 기업과 운용 방식이다. 미국 BDC는 주로 중견기업의 채권 투자나 대출비중이 높다. 자본시장연구원의 2022년 자료에 따르면 48개 상장 BDC 가운데 주식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BDC는 4개로 불과하다. 실제 미국의 상장 BDC를 묶어놓은 대표지수인 'WBDC Index'와 시가총액 1위 BDC인 아레스 캐피탈(ARCC)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70% 이상을 벤처기업 대출로 채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레스 캐피탈 자산구성(왼쪽)과 WBDC인덱스 자산 구성(오른쪽) /사진=bdcs.com반면 한국의 BDC는 개별 기업의 주식(메자닌 포함)과 벤처펀드 수익증권 위주로 운용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BDC도 대출이 가능하긴 하지만 개별 기업 투자 총액의 40%까지 대출(10억 기준 6억 지분 투자, 4억 대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국과 차이가 있다.
한국의 BDC 투자 방식은 영국의 VCT와 유사하다. VCT는 업력 7년 미만, 자산 규모 1500만 파운드, 종업원 250인 미만 기업 또는 비상장기업의 주식에 주로 투자한다. 영국 역시 대출도 가능하지만 보통주 10% 이상을 투자해야만 대출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가 정해져 있다.
레버리지 측면에서는 한국의 BDC는 미국의 제도를 참고했다. 미국의 경우 자산 총액의 150%까지 차입이 가능하다. 반면 한국의 경우 100%까지만 차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300억원 규모의 BDC가 설정됐을 경우 최대 300억원까지만 외부 조달을 통해 투자 규모를 늘릴 수 있다. 영국의 VCT는 레버리지에 대한 규정은 별도로 없지만 대부분 레버리지를 일으키지 않고 운용하고 있다. 한국 BDC와 미국 BDC, 영국 VCT 제도 특징 비교/그래픽=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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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빈티지' 펀드 숨통…세컨더리 시장 활기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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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BDC 도입이 국내 벤처생태계의 세컨더리마켓(구주 유통·LP 지분 유동화)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2021년과 2022년 코로나19 유행 당시 결성액이 급증해 이른바 '팬데믹 빈티지'로 불리는 벤처펀드의 투자가 종료됐다는 점에서 BDC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부터 해당 펀드들의 투자 집행기간이 종료되면서 조기 자금회수(Exit)를 원하는 벤처캐피탈(VC)이 내놓은 구주를 BDC가 인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유동성이 풍부했던 2018~2019년에 결성된 펀드들이 만기에 접어들면서 해당 펀드에 출자한 기관투자가(LP)의 수익증권 역시 BDC로 이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강창엽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형 BDC는 모험자본 단계는 벗어났으나 대형 자본투자 단계로 넘어가기 전인 과도기 벤처기업들에 가교자본(Bridge Capital)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BDC 활성화를 위해선 세제 혜택 등 실질적인 유인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경우 BDC가 이익의 90% 이상을 배당으로 지급할 경우 법인세를 비과세해주는 혜택을 제공한다. 영국 VCT 역시 투자액의 30%까지 소득공제해주고 배당과 양도소득에 대해 법인세가 면제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직 첫 BDC 상품이 나오기 전이지만 실질적으로 세제 혜택 등 유인책이 있어야 개인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연금 편입 등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투자자 보호와 제도 안착을 위해 BDC 도입 이후 세제 혜택 부여 방안 등을 세제 당국과 협의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