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서울경제진흥원(SBA)에서 오랜 시간 창업·스타트업 현장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아이디어가 사업이 되고 사업이 시장에서 성장하는 전 과정을 실무로 익혀왔다. 서울창업허브의 기획운영을 총괄하며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연결하는 PoC(기술실증) 사업을 설계·추진했고, 국내 유망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초기 레퍼런스를 만들 수 있도록 글로벌 진출 프로젝트도 꾸준히 고도화해 왔다. SBA 직접투자와 서울시 미래혁신성장펀드 운영에도 참여했다.
이런 경험들은 한 가지 질문으로 모인다. "한국 스타트업이 다음 성장 곡선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시야는 자연스럽게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의 역동적인 도시들로 향했다. 지난달 25일 베트남 호치민 '가을경제포럼(AUTUMN ECONOMIC FORUM) 2025'에 공식 패널로 초청받아 참석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이 포럼은 호치민 시정부가 주관하는 대규모 국제 행사로, 약 1500명의 경제전문가와 기업인들이 모여 각국의 산업 전략과 투자 흐름, 도시 경쟁력, 신산업 성장 기회를 집중 논의했다.
행사장에는 정부 관계자, 현지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 투자기관, 창업지원기관이 모였다. 정책 의지-시장 수요-민간 자본이 연결되는 구조가 빠르게 작동하고 있었다. 특히 호치민이 스마트시티, 물류·유통, 제조 고도화, 핀테크 등 핵심 의제를 중심으로 규제 개선과 실증 기회를 적극적으로 설계하려는 분위기는 인상적이었다. 도시 전체가 '성장을 전제로 한 실험'을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듯했다.
베트남 그중에서도 호치민은 최근 수년간 눈부신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동남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창업·산업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거대 도시권, 젊은 인구 비중, 빠른 디지털 전환으로 호치민은 한국 스타트업에게 강력한 테스트베드이자 초기 시장이 된다. 제조업 기반 위에 전자상거래, 모빌리티, 핀테크, 헬스케어, 스마트시티 등 신산업이 빠르게 확장되고, 외국 기업의 진입을 촉진하려는 정책적 의지도 강하다. 무엇보다 호치민은 동남아 전역을 연결하는 경제 허브로 기능한다. 아세안 전역으로 스케일업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는 뜻이다.
한국 스타트업이 반드시 미국·유럽·일본 등 기술 선진국만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기술 경쟁력은 여전히 핵심이지만 시장 규모와 개방성, 정부의 지원 속도, 실증과 상용화가 가능한 산업 구조까지 함께 고려하면 아시아 신흥시장은 오히려 더 빠르고 현실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호치민은 한국 기업에 우호적인 환경을 지속적으로 조성해 왔고 실제로 많은 한국 스타트업이 베트남에서 레퍼런스를 만들며 글로벌 확장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스타트업에게 시장 선점은 기술 개발만큼 중요한 전략이다. 기술이 뛰어나도 시장의 흐름을 놓치면 성장에 한계가 생긴다. 호치민과 같은 아시아 대도시는 인구 규모, 소비 성장률, 디지털 수용성에서 드문 고성장성을 보인다. 변화가 빠른 시장일수록 초기 진입자의 학습 속도와 네트워크 축적이 곧 경쟁력으로 전환된다. 이는 한국 스타트업에게 단순한 '해외 진출'이 아니라 '시장 주도권 확보'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아시아 시장은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력과 실행력을 높이 평가하며, 실제 사업화가 가능하도록 산업적으로 유연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이제는 한국 스타트업이 개별적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아시아 각국의 창업기관·투자사·정부와 연결된 공동 플랫폼을 만들고 더 넓은 시장을 함께 공략해야 한다. 말하자면 '아시아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구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번 호치민 포럼은 아시아, 특히 베트남 시장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한 계기였다. 한국 스타트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속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 선진국 중심의 단선적 전략에서 벗어나 아시아 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제 아시아를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자 새로운 성장의 무대로 삼아, 더 큰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다. 이태훈 본부장/사진=홍봉진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