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리나넷/사진=마리나체인 "전 세계 해운업이 '탄소'라는 새로운 파도와 마주했습니다. 탄소를 얼마나 적게 배출하고, 얼마나 정확하게 계산하며, 그 데이터를 얼마나 잘 증명하느냐가 곧 해운사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마리나체인 하성엽 공동창업자 겸 이사는 "해운업은 전 세계 화물운송의 80~90%를 담당하는 핵심 산업이지만, 앞으로는 단순한 운송업이 아니라 탄소와 데이터 중심 산업으로 재편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마리나체인은 해운·물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 데이터를 AI(인공지능)로 분석해 EU(유럽연합)와 IMO(국제해사기구) 등 주요 규제 기관의 기준에 맞춰 탄소 회계를 수행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기 위해 하 이사는 지난해 대표직을 내려놓고, 해외 사업과 파트너십을 총괄하는 역할을 직접 맡았다.
하성엽 마리나체인 공동창업자겸 이사
━
규제는 바뀌는 데 보고서는 손글씨에 수작업
━
하 이사에 따르면 EU가 해운업을 탄소배출권 거래제(EU-ETS) 체계에 공식 편입했다. 이 때문에 유럽 항만을 드나드는 모든 선박은 실제 운항 데이터를 기반으로 탄소배출량을 계산해 그만큼의 탄소배출권(EUA)을 구매·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규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데이터의 정합성이 떨어질 경우 과태료는 물론 운항 제한과 같은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은 규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대부분의 선박에서는 매일 정오마다 '눈 리포트(Noon Report)'라는 문서를 작성한다. 이 리포트에는 연료 소모량, 속도, 기상, 엔진 상태, 화물 정보 등 운항과 관련한 핵심 데이터가 모두 담긴다. 문제는 작성 방식이다. 손글씨는 물론 엑셀·워드·PDF 등 각기 다른 형태로 기록되는 경우가 많아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 이사는 "같은 선사 안에서도 선박이나 선원에 따라 포맷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며 "데이터가 분산되고, 누락과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데이터가 제각각 기록되다 보니 국제 규제 기관에 제출할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흩어진 자료를 다시 수집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작업에만 수개월이 소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일부 선사는 이 업무만을 담당하기 위해 별도의 프로젝트팀을 꾸릴 정도다.
━
론칭 6개월도 안 돼 30여곳 도입
━
마리나체인은 바로 이 '비효율의 틈'에 주목했다. 마리나체인의 해결책은 단순했다. 선원들이 기존처럼 눈리포트를 작성해 이메일로 보내되, 수신자(CC)에 '마리나체인'을 추가하는 것만으로 디지털 전환이 시작되도록 만든 것이다.
하 이사는 "선원이 새 프로그램을 배울 필요도, 프로세서를 바꿀 필요도 없다"면서 "그저 평소처럼 엑셀·PDF·이미지 파일을 첨부해 메일을 보내면 이후의 일은 AI가 맡는다"고 말했다. '마리나넷(MarinaNet)'으로 명명한 이 솔루션은 '이메일 CC 추가 → AI가 원천데이터 자동 추출→ 규제 양식에 맞춘 보고서 생성 → 탄소배출권 구매·정산까지 연동' 방식으로 구동한다. 하 이사는 "선박 운항 데이터를 기반으로 IMO의 '선박연료유 사용량 의무보고제도(DCS)', 에너지효율지수(CII), EU-ETS 등 각종 국제 규제를 한 번에 대응할 수 있는 보고서를 자동 생성하는데 기존 수작업으로 2~3개월 걸리던 작업이 AI 자동화로 최대 80%까지 줄었다"고 설명했다.
하 이사는 "해운업은 보수적인 업종이라 새로운 프로그램을 쓰라고 하면 그때부터 진입장벽이 생긴다"며 "우리는 기존 방식은 그대로 두되,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방법을 현장에 맞게 바꾸자는 전략을 썼다"고 말했다. 마리나넷은 올해 6월 정식 정식 론칭했다. 첫 선을 보인지 반 년도 채 되지 않아 대한해운, 팬오션, STX마린 등 국내 주요 선사 30여 곳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
해운 탈탄소 시장 교차로 싱가포르, JV로 뚫는다
━
국내에서 레퍼런스를 쌓은 마리나체인은 이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해외시장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그중에서도 싱가포르는 아시아 해운의 허브이자 디지털 전환과 ESG 정책에 앞서 있는 국가로 주목받는다. 선사·연료업체·금융기관 등이 한곳에 모여 있는 구조적 특징 덕분에 글로벌 해운 탈탄소 시장의 교차지점으로 평가된다.
마리나체인은 싱가포르 기반 클린테크 기업 '그린마린'과 조인트벤처(JV·합작회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그린마린은 그린 메탄올 등 친환경 연료 트레이딩뿐 아니라 교육, 탄소 규제 컨설팅을 수행하는 기업으로, 덴마크 등 유럽 출신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하 이사는 "우리가 가진 건 기술이고, 그린마린이 가진 건 친환경 연료·해운 네트워크·현지 영업 인프라"라면서 "각자의 강점을 인정하고 결합하는 방식의 JV 모델이 글로벌 ESG 규제 시장의 하나의 정답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추진했다"고 말했다.
현재 마리나체인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글로벌디지털혁신네트워크(GDIN)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법률 검토 및 역할·책임(R&R) 조율 등 JV 설립을 위한 실무 단계에 착수해 있다. 하 이사는 "JV를 통해 단순한 탄소 회계 사스(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바이오연료 중개, 탄소 규제 컨설팅·교육, 데이터 플랫폼을 하나의 모델 안에 통합한 '해운 탈탄소 허브'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며 "싱가포르에서 이 모델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면 아시아 전체를 커버하는 레퍼런스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