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혹한기 '돈줄' 마른 스타트업...토큰증권이 물꼬 터줄까

남미래 기자 기사 입력 2023.12.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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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고금리·고환율·고물가로 인한 '투자혹한기'를 견디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당국이 토큰증권(ST) 제도화를 추진하면서 ST가 스타트업의 돈맥경화를 뚫어줄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ST는 '분산원장기술'을 활용해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하는 것을 말한다. 미술품이나 부동산, 음악저작권 등 실물·무형자산을 토큰화해 유통하는 수단으로, 그동안 '조각투자'로 불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ST가 제도권으로 들어오면 폭발적으로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국내 ST 시장이 2030년 367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IP, 실물자산, 신사업 프로젝트 기반 ST 활성화 전망"


금리인상으로 투자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벤처·스타트업의 자금줄은 메말랐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누적 벤처투자액은 7조6874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25% 감소했다. 같은 기간 투자건수도 지난해 5857건에서 5072건으로 줄었다. 기업당 투자유치 금액도 32억2000만원에서 25억9000만원으로 6억3000만원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ST가 벤처·스타트업의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의 주요 투자금 회수 창구인 IPO(기업공개)까지 평균 10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그 전까지 유일한 자금조달 수단은 '투자유치'였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발행사인 스타트업이 ST로 자산을 유동화해 현금화하는 등 투자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고 주주명부가 분산원장에 기록되기 때문에 투명성도 높아져 기존 투자유치 과정보다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 등 전통 자산을 기초로 한 ST 발행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상장사인 벤처·스타트업은 명확한 기업가치 산정 기준이 없어서다. 배승욱 벤처시장연구원 대표는 "비상장기업은 기업가치를 계산할 객관적인 지표가 없다"며 "제도나 법을 잘 만든다고 하더라도, 불명확한 비상장 기업을 기반으로 발행한 ST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충분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신 콘텐츠 등 IP(지적재산권)이나 실물자산, 신사업 프로젝트를 기초로 한 ST 발행이 주를 이룰 것이란 전망이다. 스타트업이 가진 기술 특허를 기반으로 ST를 발행하는 비즈니스 모델도 등장했다. 신범준 바이셀스탠다드 대표(토큰증권협의회 회장)는 "원칙적으로는 모든 산업에서 ST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기존 ST 투자자의 주 연령대가 2030세대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에게 익숙한 K팝, 웹툰 등 콘텐츠 시장이 먼저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엔터테인먼트 블레이드 Ent의 자회사 블레이드STO는 영화 등 콘텐츠 제작에 대한 ST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ST를 발행해 일반인도 콘텐츠 제작에 투자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최영인 블레이드STO 본부장은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영화 제작 관련 ST 발행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며 "영화는 상영이 끝나도 OTT 공급 계약 등 추가적인 수익창출 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ST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가장 활발한 곳은 미국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전세계 STO 발행 프로젝트의 43%가 미국에서 이뤄졌다.

미국의 벤처캐피탈(VC) 스파이스VC(SPICE VC)가 대표적이다. 스파이스VC는 2018년 벤처펀드를 ST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토큰화된 펀드ST는 ST거래소인 시큐리타이즈 마켓(Securitize Markets)에 상장됐다. 펀드ST 보유자들은 거래소에서 언제든지 사고 팔 수 있으며, 스파이스VC는 벤처펀드를 청산할 때 발생하는 순수익을 ST 보유자에게 분배한다. 일본에서도 SBI그룹이 자회사 SBI e-sports 보통주를 5000만엔 규모(ST 1000개를 개당 5만엔)의 ST로 발행했다.

핀테크 스타트업 한 대표는 "미술품, 한우 등 자산유동화(조각투자)에 초점이 맞춰진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는 채권이나 지분증, 부동산을 기반으로 ST 발행이 우리나라보다 활발한 편"이라며 "다만, 미국도 증권신고서 면제 항목인 소액공모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해 그 규모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입법 지연에 업계 혼란…"까다로운 절차·규제 간소화 필요"


문제는 ST 법제화가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ST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이를 다루는 제도는 자본시장법상의 투자계약증권 규정 및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이 유일한 상황이다. 지난 7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ST 발행 제도 도입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이에 기업들은 눈치싸움만 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입법이 예상보다 늦어지는데다 발행 과정 등 세부 내용도 아직 정해진 게 없어 대응하기 힘든 상황"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투자계약증권 증권신고서 간소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 대표는 "현 제도 하에서 투자계약증권 증권신고서는 상품을 매번 발행할 때마다 제출해야 한다"며 "소액공모의 경우에도 300페이지 내외의 서류작업이 필요하는데 이 비용만 대략 1억원"이라며 말했다. 그러면서 "발행비용이 높아지면 투자수익이 낮아지고 이로 인해 다양한 ST상품이 나올 수 없는 악순환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초기 ST 시장 활성화를 위해 투자규제 완화 등 유동성 공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 플랫폼별 1인당 ST 투자한도를 1000만~2000만원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관계자는 "거래의 위험도는 상품의 특성에 달려있는데, 논의 중인 ST는 구조가 복잡하지도, 가격 변동 폭이 크지도 않다"며 "단순히 장외거래라고 고위험 투자로 간주해 일반 투자자의 투자한도를 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어 "P2P 금융도 법제화가 됐지만 투자한도(3000만원)를 설정하면서 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했다"며 "일반 투자자들이 충분히 시장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한도를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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