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거미줄' 꿈꾸는 일본 스타트업 스파이버…
거미처럼 미생물 통해 단백질 얻어 실 뽑아내,
친환경 특징으로 주목받으며 큰 기업과도 협업
[편집자주] 전세계에서 활약 중인 '월드' 클래스 유니'콘', 혹은 예비 유니콘 기업들을 뽑아 알려드리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나 싶은 기술,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싶은 비전과 철학을 가진 해외 스타트업들이 많습니다. 이중에서도 독자 여러분들이 듣도보도 못했을 기업들을 발굴해 격주로 소개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미줄은 섭씨 100도까지 큰 변형이 없고 열 전도율과 신축성이 뛰어나다. 미 항공우주국을 비롯한 과학계는 거미줄 양산과 활용을 적극 연구해왔다. 2007년 설립된 일본 스타트업 '스파이버'(Spiber)도 그 중 하나였다.
스파이버는 거미를 뜻하는 스파이더(Spider)와 섬유를 뜻하는 파이버(Fiber)를 결합한 단어다. 회사 공동창업자인 세키야마 가즈히데와 스가하라 준이치는 게이오대학 첨단생명과학연구소 연구원 출신으로, 인류의 화석연료 의존을 낮춰야 한다는 문제 의식 아래 생물학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이들은 소량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거미가 자연에서 가장 강력한 섬유를 뽑아낸다는 사실에 주목, 거미줄 연구를 시작했다.
스파이버는 방향을 틀었다. 일종의 '인공 거미줄' 개발이다.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이 '브루드 프로틴'(Brewed protein). 맥주를 발효시키듯 미생물에 설탕 같은 양분을 공급해 단백질을 뽑아낸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거미줄, 누에실, 양털, 염소털은 모두 단백질이다. 이러한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는 DNA를 합성, 미생물에 주입한 뒤 양분을 제공하면 미생물들이 해당 단백질을 생산한다. 이렇게 얻은 단백질을 정제한 다음 작은 구멍에 통과시키면 섬유 형태로 굳어 실이 된다.
브루드 프로틴의 큰 장점은 탄소 발생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스파이버 설명에 따르면 캐시미어 섬유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캐시미어 염소 4마리와 염소를 사육할 토지, 연 수백 킬로그램의 사료를 투입해야 한다. 반면 브루드 프로틴으로 캐시미어 특성을 가진 섬유를 생산하려면 5~10킬로그램의 당분이면 충분하다. 또 석유에서 뽑아낸 합성섬유와 달리 브루드 프로틴은 자연 분해가 가능하다. 실크, 양모 같은 다른 동물성 섬유들의 촉감도 구현 가능하다. 활용 가능성이 높은 저탄소 기술이라는 점 때문에 패션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스파이버는 패션을 넘어 다방면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지난 10월 일본 자동차 기업 토요타 산하 브랜드 '코르데 바이'(CORDE by)는 스파이버와 협업으로 생산한 차량을 별도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토요타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랜드 크루저의 카시트를 브루드 프로틴으로 제작했다. 브루드 프로틴이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 첫 사례다.
스파이버의 단기 사업 목표는 기존 패션 기업들이 브루드 프로틴을 채택하게 하는 것. 그러려면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해 생산 단가를 낮춰야 한다. 스파이버는 태국 라용 동부항만산업단지에 건설한 공장에서 연 500톤 규모 섬유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에는 미국 식품 가공, 무역 기업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 컴퍼니(ADM)와 함께 미국 아이오와에 옥수수 기반 섬유 생산 공장 구축을 위한 협력을 발표했다.
최근 스파이버는 엔저와 물가 상승으로 미국 공장 건축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재무구조가 불안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 회계연도에 매출 4억1400엔(38억원), 295억엔(2700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번 연말에는 차입금 360억엔(3300억원)의 상환 기한이 돌아오면서 위기감이 불거졌다.
그러나 손 마사요시(한국명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의 장녀 가나와 마야가 지원에 나선다고 23일 발표하면서 한숨 돌리게 됐다. 가나와는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2019년부터 컨설팅 기업 '볼드'를 운영 중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이달 말 기한을 맞은 자금을 댄 은행들이 스파이버의 상환기한을 연장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가나와는 스파이버와 약정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내년 상반기 중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조건의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다. 가나와 대표는 "기업 매각이나 IPO(기업공개)를 통한 단기적인 자본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며 "세계적인 바이오 벤처 기업을 기르기 위해 본질적인 대처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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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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