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글로벌 창업도시로 가는 길⑧]
'바이오 창업허브' 꿈 이뤄가는 인천 창업생태계
[편집자주] 1998년 벤처기업육성특별법 도입 후 국내 창업생태계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질적인 면에선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다. 수도권 쏠림은 심화하고, 글로벌화는 더디기만 하다. 전문가들은 창업이 경제를 이끄는 동력으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창업생태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국가 차원을 넘어 지역 단위 맞춤형 창업생태계를 구축, '글로벌 창업도시'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유니콘팩토리가 다각도로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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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국제도시/사진=인천시 송도를 중심으로 구축된 바이오·의료 클러스터, 해외진출에 유리한 입지, 산업 다양성 및 기술 집적도, 높은 청년인구 비율, 글로벌 교육·연구기관의 밀집도. 이 5가지 키워드는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 인천대 창업지원단, 인천테크노파크, K-바이오랩허브, 나눔엔젤스 관계자들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인천 창업생태계의 강점으로 꼽은 것이다.
인천에는 지난해 기준 1만2740개의 기술 기반 창업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전국에서 5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인구의 26.6%가 청년층으로, 창업 잠재력도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천은 이 같은 기반으로 '창업→성장→글로벌 진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갖춰가고 있다. 하지만 창업기업의 생존율, 민간 투자 인프라 등의 지표에선 여전히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중소벤처기술혁신정책연구센터가 6월부터 두 달 간 인천 창업생태계 전반을 조사했다. 제작=류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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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중심 바이오·의료 특화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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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창업생태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단연 '바이오·의료기기' 분야 경쟁력이다. 송도국제도시는 GMP(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기반의 생산시설과 인천국제공항·항만을 연결하는 첨단물류 인프라가 결합된 국내 유일의 클러스터로 꼽힌다. 강철형 K-바이오랩허브 팀장은 "바이오 의약품은 온도와 시간에 민감해 항공 운송이 핵심인데 송도는 공항에서 20분 거리로 지리적 이점이 탁월해 바이오헬스케어 기업들의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송도국제도시엔 삼성바이오로직스(1,032,000원 ▲10,000 +0.98%), 셀트리온(173,000원 ▼1,100 -0.63%), 빅파마 머크 등 국내외 대기업이 속속 자리를 잡고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도 내후년 인천 송도 바이오캠퍼스 가동을 앞두고 있다. 이곳에서 국내 유망 바이오·제약 스타트업과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펼칠 예정이다.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 이한섭 센터장(사진 왼쪽)과 임직원들이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중소벤처기술혁신정책연구센터 연구원(오른쪽)들과 인천 창업 생태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사진=류준영 기자 인천시는 바이오·의료기기 클러스터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영종 유보지를 신규 투자처로 확보하고, 남동공단은 바이오 소재·부품·장비 중심지로 재편하고 있다. 김선우 STEPI 중소벤처기술혁신정책연구센터장은 "GMP 기반 제조시설의 접근성, 인허가 절차의 유연성, 송도 경제자유구역의 세제혜택 등은 인천이 바이오·의료기기 창업의 거점으로 자리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비, 잘 짜여진 교통망은 청년층 유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창업 초기 인재들의 정주 여건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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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연구소, 스타트업이 만나는 '산·학·연 집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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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글로벌 캠퍼스와 창업지원기관, 연구원 등이 집적돼 있다는 점에서도 우위를 가진다. 서울대는 시흥 배곧지구의 경제자유구역과 연계해 세계적 연구개발 기반을 구축 중이다. 향후 서울대병원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인하대학교는 기술지주회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00% 자회사인 '아이스타트업랩'을 설립, 직접 투자 및 액셀러레이팅을 진행 중이다. 실험실 특화형 창업선도대학, 예비창업패키지 운영과 함께 100여명의 실전형 멘토단이 회계·법률·마케팅 등 전방위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20건 이상의 교수창업을 지원하며, 지역 창업생태계의 중심축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 최초의 공공·민간 협력 기반 창업 허브인 '인천스타트업파크'는 입주 공간 제공, 보육, 멘토링, IR, 글로벌 네트워킹 등 단계별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며, 4차 산업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는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핀테크(금융기술), 바이오·헬스, 스마트 모빌리티 분야 유망 기업을 발굴해 데모데이 연계, 스케일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인천테크노파크 창업보육센터, 인천중장년기술창업센터, 인천지식재산센터, 인천KOTRA지원단,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다양한 창업지원기관이 집적돼 있으며, 가천대학교 뇌과학연구원과 이길여암당뇨연구원 등 첨단 연구기관도 함께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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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투자 인프라 '아직 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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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천의 민간 투자 인프라는 여전히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인천의 스타트업 5년 생존율은 29.2%로 전국 평균(33.8%)보다 낮으며, 액셀러레이터(AC) 18곳, 벤처캐피털(VC) 2곳이 전부다. 벤처투자포털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벤처투자 실적은 전국의 3% 수준에 불과했다. 서울(47%), 경기(20%)와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다.
2023년 인천시 팁스 선정 기업 수는 26곳으로, 부산(23곳), 충남(22곳), 광주(18곳)와 유사한 중위권에 머물렀다.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난해 진행한 지역 기업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주요 애로사항 1위가 '자금 조달'(28.4%)이었다.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 인천대 창업지원단, 인천테크노파크, K-바이오랩허브, 나눔엔젤스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 창업생태계에 대한 강점, 기회, 비전, 전략 등을 논의하는 워크숍을 열고 있다/사진=STE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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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빅웨이브모펀드 키우고 홍콩모델 벤치마크" 전문가들의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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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인천의 투자 갈증을 해소할 해법으로 '인천빅웨이브모펀드'의 업스케일을 꼽았다. 이 펀드는 인천시가 주도한 최초의 지자체형 모태펀드로, 2021년 출범 이후 3년 만에 6000억원 규모로 커졌고, 지난해엔 1조원을 넘어섰다. 현재까지 36개의 자펀드에 총 426억원을 출자했고, 인천 기업에는 1213억5000만원이 투자됐다.
또 전문가들은 인천을 '홍콩 모델'로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글로벌 네트워크와 실증·수출을 연계할 수 있는 이른바 '해양도시형 창업 전략'이 인천의 입지와 산업 구조에 최적이라는 판단이다. 인천시와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가 '빅웨이브(BiiG WAVE) 투자유치 설명회(IR)'를 진행중이다/자료사진=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 서울과의 지리적 근접성은 인천 창업생태계에 있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고 있다. 청년 인재 유입에는 유리하지만 동시에 인천의 유망 인재들이 서울로 유출되는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창업 사례를 통한 지역 정체성 강화 △경험 있는 창업가 및 멘토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제도 도입 △지역 대학과 창업 생태계 간 연계 강화 △스타트업파크·창조경제혁신센터·인천테크노파크 간 통합 거버넌스 구축 △글로벌 진출 지원 프로그램의 안정적 정착 및 스케일업 기업 육성 등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김선우 STEPI 센터장은 "인천은 젊은 인재·개방성·자율성 등을 핵심가치로 삼아 글로벌 실증이 가능한 테스트베드로 성장하고 있다"며 "이를 뒷받침할 제도 설계가 인천 창업생태계 성공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