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경쟁의 새로운 격전지로 주목받고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SiC(탄화규소·실리콘카바이드)와 GaN(질화갈륨·갈륨나이트라이드) 반도체이다. 반도체 칩을 만드는 새로운 물질로, 이들을 다룰 수 있는 공정 기술을 확보하는 데 기업들은 물론 국가까지 뛰어들고 있다.
SiC와 GaN은 주로 전력반도체에 사용된다. 전력반도체는 반도체 중에서도 연산과 제어를 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 혹은 비메모리 반도체의 일종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소형 전자기기는 물론 세탁기, 냉장고, TV를 비롯한 각종 전기전자제품에서 전력을 변환, 제어,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배터리를 넣거나 전원을 꽂으면 이 전력반도체가 1초에 1000번 넘게 스위칭을 하며 전기를 변환하고, 변압해 기기가 원하는 형태로 바꿔 제공한다. 그래서 크기와 형태를 가리지 않고 전자제품에 꼭 필요한 것이 이 전력반도체이다.
전력반도체는 원래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반도체 소재인 실리콘(Si)를 통해 만들어졌다.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소재의 95%를 실리콘이 차지하고 있다. 실리콘이 대세인 이유는 실리콘이 지구상에서 산소 다음으로 많은 원소이기 때문이다. 사막의 모래를 퍼다가 고온으로 가공하고, 약간의 화학공정만 거치면 반도체 칩을 만드는 원판인 실리콘 웨이퍼로 가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력반도체에 요구되는 연산 수준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기존의 실리콘 소재로는 이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태에 도달했다. 전력반도체가 전력을 변환하는 과정에서 발열이 생기는데, 실리콘의 경우 150도씨를 넘어갈 경우 반도체의 특성을 잃게 된다. 다시 말해 실리콘을 기초로 만든 전력반도체가 고장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 보급 등을 이유로 전력반도체에 요구되는 성능 기준은 더 높아지고 있다. 배터리 크기가 커지면서 반도체에 걸리는 전압 역시 강해진다. 일반적으로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우 평균 전압이 3.7볼트(V) 수준인데,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400V를 넘나든다. 전력반도체 입장에서는 10배가 넘는 전압을 처리해야 하는 가혹한 환경에 노출된다.
이때 새로운 소재로 등장한 것이 SiC와 GaN이다. 둘 다 실리콘과 마찬가지로 전압이 걸릴 때에만 전기를 흘려보내는 반도체의 특성을 가지면서도, 더 가혹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물질이다. 반도체 성질을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전압을 뜻하는 '절연파괴전계'가 실리콘 대비 10배 이상 높고, 최대 동작 온도 역시 실리콘이 150도인데 비해 SiC는 400도, GaN은 800도로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이에 이같은 신소재를 활용한 '차세대 전력반도체' 개발 및 공정기술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이한 점은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실리콘 반도체 생산과 달리, 차세대 전력반도체의 경우 전 세계에 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과 시설이 고루 퍼져있다는 점이다.
물론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역시 신소재 공정 기술 확보에 돌입했지만, 아직 기존 시장만큼의 점유율을 확보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전 세계 기업들은 물론 국가까지 나서 이 차세대 전력반도체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점차 성장할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도이다.
하지만 차세대 반도체에는 이전에는 없던 문제가 있다. 원료 때문이다. 전 세계에 고루 퍼져있는 실리콘과 달리 갈륨의 경우 95%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자원의 무기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중 무역분쟁의 격화로 서방의 반도체 제재에 반발한 중국이 갈륨 수출을 통제하자 유럽연합이 "중국이 EU의 팔을 비틀고 있다"고 당혹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미 전기차에 GaN 전력반도체가 탑재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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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이재원 기자
- 기자 사진 이대경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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