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스타트업을 위한 규제 차등화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기사 입력 2022.08.1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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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칼럼]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학회가 모기업과 연구용역 관련 계약을 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그 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라 모든 외부계약에 대해 안전보건 수준 평가 자체 체크리스트를 작성·제출하고 산업안전관리공단이 산업재해율 확인서를 발급·제출해야 한다며 학회도 위 서류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학회는 상시 근로자가 5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의 사업주 등에는 법을 적용하지 않으므로 해당사항이 없다고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학회와 같은 비영리기관에 규제를 무분별하게 적용하거나 영세한 스타트업에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필요한 규제를 그대로 집행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많은 스타트업이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인데 여기에 적용하는 개인정보보호 규제의 경우 기업규모와 관계없이 동일한 규제를 적용한다. 이를테면 개인정보가 분실·도난·유출·위조·변조 또는 훼손되지 않도록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기술적·관리적 및 물리적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 개인정보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할 의무 등은 모든 개인정보처리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한다. 이는 규모가 작더라도 법 위반으로 인한 정보유출 사고의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정보보호책임자를 지정해야 하는 의무는 다르다. 소상공인의 경우 별도 지정 없이 그 사업주 또는 대표자를 개인정보보호책임자로 지정한 것으로 본다는 특칙을 둬 의무부담을 차등화했다.

이처럼 규제대상의 규모 및 특성에 따라 차등화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을 '규제 차등화'(regulatory tiering system)라고 한다. 규제 차등화는 차등화한 규제를 적용받는 기업의 규제부담 완화를 통해 규제 형평성을 제고하고 규제로 인한 사회 전체의 편익에 대비해 사회적 비용부담을 효율화하는 것이다. 결국 규제 차등화는 '규제는 모든 수범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일반성, 평등성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질적인 규제형평과 유연한 규제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평등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신설 규제는 스타트업에 규제를 이해하는 시간, 규제집행 및 모니터링 비용, 새로운 장비구입, 규제기관과 관계정립 등 다양한 비용을 유발한다. 따라서 스타트업에 발생하는 규제부담에 대한 고려가 없는 단일한 기준에 따른 규제방식은 적절하지 못하다. 스타트업은 규제비용이 늘면 제품가격에 반영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가격이 상승하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고 시장가격을 유지하면 마진이 줄거나 없어지는 어려움에 처한다. 따라서 스타트업을 비롯한 소기업의 경우 규제 차등화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행정규제기본법은 규제영향분석서에 규제의 시행이 '중소기업기본법' 제2조에 따른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포함하도록 했고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려는 경우 소상공인 및 소기업에 대해 해당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거나 과도한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규제의 전부 또는 일부의 적용을 면제하거나 일정기간 유예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규정해 규제 차등화 제도를 도입했다.

규제 차등화는 보통 특정 규모 및 유형의 기업·산업에 대한 의무면제, 기준완화, 절차 간소화, 행정제재 부담 완화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규제 차등화의 필수 전제는 규제의 시행으로 스타트업 경영에 미칠 사항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영향 분석이 내실 있게 진행돼야 하며, 특히 규제 입안과정에서 스타트업의 의견을 실질적으로 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신정부는 스타트업의 의견을 반영해 기존 규제를 검토한 후 스타트업에 대해 차등화가 필요한 규제를 개선하고 나아가 신설·강화규제 설계 시에는 규제 차등화를 면밀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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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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