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강대임 UST 총장/사진=UST"연구실에 머무는 과학자가 아니라 기술을 사업으로 연결해 세상을 바꾸는 인재를 키우겠습니다."
강대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은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고객이 선택해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며 "벤처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제동행 창업모델'을 설계하는 등 교육의 틀을 바꿔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창업이 실패해도 학교에서 제적되지 않고 연구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학사제도를 마련하는 것, 그리고 연구가 연구로만 끝나지 않고 비즈니스로 이어지는 창업 학풍을 만드는 것. 이 두 가지를 임기 중 가장 중요한 평가 지표로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UST는 2003년 설립된 국가 출연연구기관 기반 대학원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30개 출연연을 스쿨로 두고 교수와 학생이 도제식으로 연구하는 교육 체계를 운영한다. 재학생은 약 1700명, 누적 졸업생은 약 4300명이며, 외국인 학생 비율이 약 26%에 달할 만큼 국제화된 연구인력 양성기관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원장을 지낸 강 총장은 지난해 2월 취임했다. 그는 38년간 몸담았던 표준연을 떠난 뒤 DGIST 연구부총장 등을 거쳐 수소저장장치를 개발하는 벤처기업 헥사 대표이사를 2년여간 맡은 바 있다. 당시 기술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모기업의 경영상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회사는 2년 반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아무리 좋은 기술도 고객이 선택해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강 총장은 취임 1년여 만에 △학생 창업트랙(전환형·마스터형) 사제동행 딥테크 창업 △AI 활용 인증제 도입 △국가전략분야 플래그십 전공 운영 △과학기술정책 전공 복원 추진 등 굵직한 변화를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엄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가 강 총장을 만나 그가 그려가는 UST의 미래를 들어봤다.
-표준연 정년을 5년 앞두고 벤처기업으로 옮긴 이유는
▶국가로부터 받은 여러 혜택을 꽃피울 수 있는 곳은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액화수소를 저장·운송하는 사업모델을 가진, 직원 15명의 작은 회사였다. 모기업이 과거 정부시절 수소산업 붐을 타고 수백억원 투자를 받았지만 사업모델 자체가 쉽게 성립되지 않는 분야였고, 결국 연구개발 부문만 따로 떼어 스핀오프한 회사를 제가 맡게 됐다.
-연구실과 벤처 현장에서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연구원 시절엔 세계 최초·최고 기술을 지향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기업에 가서 투자유치 현장을 직접 겪어보니 그것만으로는 사업이 되지 않는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38년의 연구원 생활이 온실 속 삶이었다면 2년 반의 벤처는 정말 야생에 나가 살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결국 고객이 선택해 주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소용없다는 걸 절감하며 출연연 시절 너무 기술 중심적이었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그 경험이 다시 학계·연구계로 돌아오게 된 계기가 됐나.
▶그런 셈이다. 이후 충남대 연구교수로 일하다가 UST 총장 공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응모했다. 벤처에서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연구를 기획할 때부터 시장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총장 공모에 계획서를 낼 때 재학생 10% 정도에게는 창업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썼다. 창업이 꼭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창업을 경험해보는 것 자체로 연구에 대한 생각과 자세가 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 취임 후 들여다보니 상황이 어땠나.
▶지난 5년간 UST의 연차보고서를 보면 창업 관련 교육은 있었다. 하지만 학생창업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학생들이 창업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었다. 재학 중 창업을 하면 소속 연구소를 그만둬야 하는 국가연구소 내부규정이 문제였다.
-어떻게 풀었나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마침 정부가 연구원 창업을 강하게 장려하면서 분위기도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12월쯤 관련 규정 가이드라인이 개정됐다. 이를 토대로 비교적 창업이 활발한 ETRI·화학연·기계연·생기원·생명연 등 5개 기관과 먼저 MOU를 맺어 해당 기관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길을 열었다. 이후 지금은 여러 기관에서 관련 규정이 바뀐 상태다. 강대임 UST 총장/사진=UST-구체적으로 어떤 창업 모델을 구상하고 있나.
▶학생이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지도교수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서 참여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역할을 맡아 추진하는 '사제동행 창업모델이 대표적이다. 박사학위 취득 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SCIE급 국제저널 1저자 게재 등의 요건을 창업 성과로 대체해주는 방향이다. 다만 그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어떻게 규정할지는 아직 정립중이다. 법인 설립, 시리즈A 투자유치 등 창업 전문가, 투자자들과 협의해 기준을 마련하려 한다.
-창업 트랙은 어떻게 구성했나.
▶두 가지다. 이미 UST에서 수년간 연구하며 일부 기술을 보유한 학생이 그 기술로 창업하는 '전환형',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창업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는 '마스터형'이다. 마스터형은 약 1800명에 이르는 전체 교원을 대상으로 사업화 가능한 기술이 있는지 먼저 조사한다. 이렇게 발굴된 기술을 공개하고, 여기에 관심 있는 학생이 석사과정으로 입학해 직접 CEO를 맡는다. 기술을 보유한 교수는 CTO나 현물 출자자로 함께하고, 창업 전문가와 투자자가 멘토로 결합하는 구조다. 쉽게 말해 이미 만들어진 기술에 학생을 매칭해 창업까지 끌고 가는 방식인데 국내외 어디에도 없는 모델일 것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지난 해 재학생 대상으로 창업 의향 설문을 진행했는데, 450여 명이 참여했고, 그 중 90명이 창업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 올해 처음 시행한 'UST 학생 창업트랙(전환형) - 사제동행 딥테크 창업' 공모전에 12개 스쿨 15개팀이 신청했다. 양자컴퓨터 자원 최적화 미들웨어, 방사선 약품 유효성 예측 서비스, 인공위성 카메라 센서 모듈 등 국가연구소 현장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깊이의 기술들이 창업 아이템들이 쏟아졌다.
-창업과 함께 공을 들이는 분야는 무엇인가.
▶미래 산업을 이끌어 갈 전문인력 양성이다. 올해부터 바이오·AI·양자·로봇 등 4개 분야를 '플래그십 전공'으로 지정해 해외 최고 과학자를 초청하는 'UST 글로벌 알파 클래스' 예산을 확보했다. 지난 6월 바이오 분야 강의를 진행했고, 올여름에는 하버드 의대 교수진 3명이 방문해 학생들과 강의를 진행한다. 현재 약 30명의 해외 석학 교원풀을 확보했는데 앞으로 이들과 실질적인 협업, 학생·교원 방문 연구, 학위 후 포닥 연계 등을 추진하는 게 목표다.
-'AI 활용 인증'을 의무화하는 제도도 새롭게 도입한다고 들었다.
▶내년부터 시행한다. 지난해 3월 이 구상을 처음 밝혔을 때만 해도 AI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그 사이 정부 차원에서도 AI를 국가적 의제로 다루게 됐다. 별도의 시험이나 자격증 형태가 아니라 학생들이 수행하는 연구 논문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담아내도록 해서 연구의 질을 높이는 효과와 AI 역량 평가를 동시에 얻으려는 일종의 '내재형' 인증 시스템이다. 이미 해외 저널에서는 AI를 높은 수준으로 활용해 연구 성과를 낸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임기 중 반드시 이건 꼭 이루고 싶다는 과제 하나를 꼽으라면.
▶2022년 폐지된 과학기술정책 전공을 복원하는 것이다. 2005년부터 운영됐지만 소극적 운영으로 선발이 줄어들며 폐지됐다. 국가연구 분야별 정책전문가를 양성하는 학위 과정을 운영 사례는 일반 대학에서도 찾기 어렵다. 기술 교육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만 이를 국가 차원에서 종합 설계할 '지휘자'가 없다는 게 문제다. 국가 R&D 예산이 늘고 있는 만큼 이를 효율적으로 설계할 정책 역량을 갖춘 전문인력 양성이 꼭 필요하다. 특히 외국인 학생이 28%에 달하는 UST 특성상 이들이 귀국 후 자국 과학기술 정책을 이끌 친한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키워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