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추락, 차량 급발진...'이것' 원인일 수 있다?

경주=박건희 기자 기사 입력 2024.06.0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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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줄서서 기다리는 '그곳'… 이젠 우주 기업도 가세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 올 8월부터 24시간 운영 체제 전환
국내 최초 전력반도체 이온빔 조사 시설도 구축 계획… 반도체 '소프트에러' 잡는다

경북 경주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에서 양성자 가속기의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경북 경주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에서 양성자 가속기의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 2009년 9월 미국. 일가족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렉서스 ES350 차량이 갑자기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리기 시작했다. 가속 페달은 말을 듣지 않았고 시동도 끌 수 없었다. 경찰관이었던 운전자 마크 세일러씨는 911에 전화해 위급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911이 대응할 새도 없이 차량은 교차로에서 다른 차들을 들이박은 뒤 길가로 굴러떨어졌다.

토요타 대규모 리콜 사태의 시발점이 된 이 사건은 '기계적 결함(페달)'이 원인으로 지목되며 2011년 2월 종료됐다. NASA(미 항공우주국) 제트추진연구소(JPL)는 '우주방사선'에 의해 소프트웨어에 오류가 생겼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유사한 분석 결과는 계속해서 보고됐고 결국 2013년 10월, 토요타 차량의 급발진이 기계 결함이 아닌 소프트웨어 결함에 의한 사고였음이 법원 판결에 의해 드러났다.

국내 유일 양성자가속기를 보유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이 우주방사선에 의한 반도체 결함을 잡아내기 위해 올 8월부터 24시간 가동을 시작한다. 삼성전자 (79,600원 ▲1,000 +1.27%), SK하이닉스 (221,000원 ▼1,000 -0.45%) 등 국내 기업의 쏟아지는 수요에 따라 가동 시간을 확대키로 했다. 우주 산업이 본격화되며 최근엔 국내 인공위성 제작 업체 등 우주 관련 기업의 문의도 잇따른다.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에서 만난 이재상 양성자과학연구단장은 "토요타 사건 이후 우주방사선이 일으키는 '소프트 에러(soft error)'에 대한 관심이 반도체 업계를 중심으로 커졌고, 가속기 실험을 통해 결함을 예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100MeV의 고에너지를 가진 우주 감마선이 공간에 분포해 있는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100MeV의 고에너지를 가진 우주 감마선이 공간에 분포해 있는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사람 눈에 보이진 않지만, 지구에는 양성자, 중성자, 뮤온 등 수백 메가전자볼트(MeV)급 고에너지 입자로 이뤄진 우주방사선이 끊임없이 떨어진다. 지상의 전자 장비나 우주 관측 장비가 방사선에 노출되면 일시적인 오류가 발생하거나 영구 손상을 입는다. 이를 소프트 에러라고 부른다.

태양 활동이 활발한 올해는 우주방사선의 영향이 특히 큰 시기다. 태양은 지속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활동이 활발할수록 고에너지 입자가 포함된 태양풍이 크게 증가한다. 올해 위성 이상 작동, 전파 교란 등 '우주전파재난'이 경고된 이유다.

양성자과학연구단의 양성자가속기 시설로 들어가는 입구 모습. /사진=박건희 기자
양성자과학연구단의 양성자가속기 시설로 들어가는 입구 모습. /사진=박건희 기자

양성자가속기를 구성하는 빔라인의 내부 모습. 전기장을 이용해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후 물질과 충돌시키는 공간이다. /사진=박건희 기자
양성자가속기를 구성하는 빔라인의 내부 모습. 전기장을 이용해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후 물질과 충돌시키는 공간이다. /사진=박건희 기자

소프트 에러를 사전에 잡기 위해 필요한 게 양성자가속기다. 양성자가속기는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후 물질과 충돌시켜 물질의 구조와 특성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물질을 생성하는 연구 시설이다. 우주선을 지상에서 모의로 구현하는 것인데, 이를 반도체에 100meV에 달하는 고에너지 빔을 쬐면 방사선에 노출된 반도체에 어떤 결함이 생기는지 수 초 만에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1.37대 1을 기록했던 양성자 빔 서비스의 경쟁률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2020년 이후 3대 1 정도의 경쟁률을 유지 중이어서, 신청자 3인 중 1인만 품질을 검사하는 꼴이다. 이 단장은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 올해 8월부터 가속기를 24시간 가동한다"고 밝혔다. 낮에만 운영하던 가속기를 이제는 밤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반도체 기업의 양성자가속기 활용은 꾸준히 증가 추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단연 '최다 사용자'다. 120~130일 정도인 연간 빔 서비스 일수 중 40%를 반도체 기업이 차지한다. 인공위성 개발이 활발해지며 우주 부품 기업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도체·우주를 합치면 연간 빔 서비스 일수의 약 60%를 굵직한 산업체에서 활용한다.

빔라인에서 생성된 최대 100meV에 달하는 에너지가 최종적으로 목표한 제품에 빔을 쏴 그 영향을 확인하는 공간인 표적실.  /사진=박건희 기자
빔라인에서 생성된 최대 100meV에 달하는 에너지가 최종적으로 목표한 제품에 빔을 쏴 그 영향을 확인하는 공간인 표적실. /사진=박건희 기자
양성자를 넘어서 국내 최초의 전력반도체 이온빔 서비스도 시작한다. 전력반도체는 전력을 변환·처리·제어하는 반도체로, 각종 배터리나 모바일 기기에 들어간다. 이온빔 실험은 전력반도체에 빔을 쏴 이때의 전력 손실량을 측정한다. 지금까진 국내에 관련 연구 인프라가 없어, 검증이 필요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일본 스미토모 중공업에 하루 약 1억원을 지불하며 실험해야 했다.

이 단장은 "이온빔 서비스를 시작하면 국내 기업은 산업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설립 계획에 대해선 "조사(照射) 시설은 이미 구축했지만, 공정 설비 등을 마련하는 데 1~2년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력반도체 이온빔 구축 사업은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중기재정사업의 일환으로 심의 중이다.

이 밖에도 인공위성 등 우주 장비·부품 개발을 위한 '우주 환경 모사 장치'가 지난해 9월 개발돼 운영 중이다. 인공위성이나 탐사선에 탑재될 반도체를 사전 검증하는 장치다. 우주로 발사된 뒤 우주방사선의 영향으로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는 확률을 최소화한다.

이 단장은 "현재 100meV 수준인 양성자가속기의 성능을 추후 200meV의 고에너지까지 확장할 계획"이라며 "해외 의존도가 높은 최종 반도체 실증 시험을 국내에서 완료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양성자과학연구단의 양성자가속기의 개요를 설명 중인 이재상 양성자과학연구단장 /사진=박건희 기자
지난달 30일 양성자과학연구단의 양성자가속기의 개요를 설명 중인 이재상 양성자과학연구단장 /사진=박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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