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벤처투자 옥죄는 증권신고서 규제

고석용 기자 기사 입력 2023.12.2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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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최근 벤처투자업계를 대상으로 진행한 공시 교육이 논란이다. 금융당국이 자본시장법에 따라 스타트업이 벤처투자조합이나 개인투자조합에서 투자를 받으면 각 조합의 조합원 수를 모두 파악해 총 50인이 넘으면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하면서다.

법이 갑자기 개정된 것은 아니지만 벤처투자업계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조합 1개면 그 자체가 1인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벤처투자업계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사모펀드는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로 분류돼 50인 산정 등 규제에서 예외를 적용받아왔기 때문이다. 같은 사모 방식인 벤처·개인투자조합도 동일한 것으로 해석해왔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은 "통상 사모펀드는 '신탁'을 결성해 법인격이 부여되나 벤처·엔젤펀드는 '조합'이어서 법인격이 없다"며 원칙을 내세웠다. 그러나 벤처투자업계는 "조합이나 신탁이나 출자자들이 자금운용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동일한데 조합에만 법인격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벤처투자 육성 정책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사실 정부는 해당 규제가 벤처투자시장에 부담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에 2021년 정부합동 '벤처보완대책'을 통해 "2년 내 금융투자상품잔고가 100억원 이상임을 금융위원회에 입증한 벤처투자조합은 50인 산정시 제외"하기로 하고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그러나 100억원 기준 때문에 소형 벤처·개인투자조합은 포함되지 못해 당시부터 '반쪽짜리'라는 불만이 나왔다.

투자자 산정 규제가 스타트업에 가져올 어려움은 더 크다. 정부의 지침에 따르면 스타트업은 투자유치 단계마다 투자자에게 비히클(투자수단)을 확인하고, NAV(순자산가치)가 100억원 이상인지, 이를 2년 내 금융위에 입증은 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투자자 산정 예외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투자자에게 '조합원 목록을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투자를 통해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벤처투자자들은 늘 '갑'일 수밖에 없다. 투자혹한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시장에서 투자자 비히클을 따지고 조합원 목록을 요구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많지 않다. 비현실적인데다 복잡한 규제들은 스타트업을 옥죄는 진짜 '킬러 규제'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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